난방비 폭탄에 냉방살이…다섯 겹 껴입고 추위와 사투

취약계층의 고단한 겨울나기
복지시설 "다른 사업비 빼서 난방비로"
"연탄값 아끼려고 20여년 전 보일러를 설치했는데 요즘엔 다시 연탄을 쓰고 있죠"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만난 주민 이모(85) 씨의 집안은 냉골이었다.이씨는 양말과 겉옷을 겹겹이 껴입고 추위에 버티고 있었다.

올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몰아닥친 전날, 이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침과 밤에 잠깐 보일러를 켰다.

이씨는 "그렇게 아껴 써도 한 달에 난방비가 28만∼29만원이 나온다"고 했다.치솟는 난방비 걱정에 에너지 취약계층의 겨울은 더 시리다.

이날 낮 찾은 종로구의 한 경로당에선 최근 받아 든 난방비 고지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바지는 세 겹, 상의는 다섯 겹을 입었다는 신조자(83) 씨는 "잘 때도 이렇게 껴입고 자는데도, 작년보다 난방비가 5만원 더 나왔다"고 한탄했다.신씨 옆에서 이불을 나눠 덮고 있던 정영순(80) 씨는 "보일러를 약하게 틀었더니 방바닥이 얼음장 같고, 난방 대신 전기장판을 틀었더니 이젠 전기세가 올랐다"며 "전기장판 쓰는 것도 부담"이라고 걱정했다.
취약계층의 거주를 돕는 복지센터도 '난방비 폭탄'에 난처한 상황이 됐다.

장애인 54명이 거주하는 서울 노원구의 장애인거주시설 '동천의집'은 직원들이 난방비 절약에 발 벗고 나섰다.장애인들 생활 공간은 따뜻하게 유지해야 하니, 대신 직원들 근무 공간의 온도를 낮추기로 했다.

이 시설은 급등한 난방비 부담에 상시 개방하던 외부 화장실까지 폐쇄했다.

김영문(55) 원장은 "운영비는 5%만 인상됐는데 난방비는 2배 가까이 올랐다"며 "외부 지원금은 코로나19 이전의 2/3 수준이라 감당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업훈련 등 다른 사업비를 빼서 난방비에 써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일반식당처럼 시설 가스도 업소용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구로구 장애인복지시설 '헬렌의집' 원장 A씨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애인 5가구가 사는 이곳의 이번 달 난방비는 가구당 50만원씩 올라 지난달보다 총 250만원이 더 나왔다.

예산을 초과하는 난방비에 충격을 받았다는 A씨는 "어디서 예산 긴축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A씨는 "복지시설이라서 감면받은 게 이 정도"라며 "입주자들이 불편을 느끼면 안 되니 난방을 줄일 수도 없다.

서울시에서 난방비 조사에 나섰으니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서대문구의 한 여성노숙인센터는 시설 이용자들에게 내복을 나눠주며 실내 온도를 낮추겠다고 양해를 구했다.센터 관계자는 "생활에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라는 걸 설명해 드렸다"고 사정을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