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日시대 조선문학의 본질은…' 동인지로 읽는 韓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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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6
“살아남기도 바쁜 세상에 한가하게 시나 쓰느냐고들 하지. (생략) 아무리 점령당한 땅이라 해도 예술마저 점령당할 순 없잖아.”
1920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지성인들의 담론 거점으로 기능
뮤지컬 ‘팬레터’에서 삼엄한 일제강점기에 문학회를 꾸리고 동인지를 발간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동인지란 사상, 취미 등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편집·발행하는 잡지다. 특정 장르나 리얼리즘 같은 하나의 지향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반 잡지와 구분된다. ‘창조’ ‘폐허’ 등 동인지와 ‘개벽’ 등 잡지는 근대에 문학을 향유하고 담론을 형성하는 주요한 공간이었다.박주택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등 ‘프락시스(praxis) 연구회’ 소속 연구자 10명이 지난달 <한국문학사와 동인지문학>(사진)을 출간했다. 동인지와 잡지가 한국문학사에 남긴 발자취를 조명하는 연구서다. 1920년대부터 6·25전쟁 전후까지 동인지·잡지 연구를 종합·정돈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한 결과물이다.
2005년 결성된 프락시스 연구회에는 박 교수와 그의 제자 약 30명이 몸담고 있다. ‘실천’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프락시스’에서 알 수 있듯이 학술적 성과를 대학 울타리 밖 사람들과 공유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이번 책은 프락시스 연구회의 세 번째 책이다.
10명의 연구자가 글 한 편씩을 실었다. 연구 대상은 ‘문장’ 같은 일제강점기 문예 동인지부터 육군종군기관지 ‘전선문학’, 여성지 ‘만국부인’까지 다양하다. 박 교수는 “동인지나 잡지의 흐름을 정리하면 한국문학의 변화상을 큰 그림에서 조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동인지에는 당대 지식인의 고민과 열정이 녹아 있다. 고봉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소설가 이태준, 시인 정지용 등이 펴낸 동인지 ‘문장’이 ‘조선적인 것’을 어떻게 탐색했는지 분석했다. ‘문장’은 일제강점기 조선 고유의 문화가 지워져 가는 가운데 ‘조선적인 것은 서구 근대와 무엇이 다른가’ ‘전통이 조선적인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공간이었다. 이태준은 이 동인지에 수록한 ‘고완품과 생활’이라는 글에서 “고전이라거나, 전통이란 것이 오직 보관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주검’이요, ‘무덤’의 대명사일 것”이라며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의 서재를 묘지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프락시스 연구회는 연내 <한국문학사와 동인지문학> 후속편을 내고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동인지 및 잡지의 흐름을 정리할 계획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