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옷 무신사 냄새 나나요?"…스트리트 패션왕의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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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인기의 역설패션기업들이 영 달가워하지 않는 유행이 하나 있다. 10~20대들이 마치 유니폼을 입듯 같은 브랜드 의류를 대거 구입해 입는 흐름이다. 이런 식으로 노출이 많아지면, 브랜드의 희소성은 떨어지고 되레 이미지가 훼손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1020 유니폼'된 무신사 스타일
유행하는 만큼 놀림거리 되기도
노스페이스·톰브라운·버버리
'너도나도 다 입는' 브랜드로 각인
희소성 사라지며 인기 뚝 떨어져
요즘엔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가 10~30대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말 못 할 고민에 빠졌다. 지난달 쿠팡플레이의 코미디쇼 SNL코리아에 등장한 “무신사 냄새 지리네”라는 대사는 무신사가 겪는 인기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는 게 패션·유통업계의 시각이다.이 대사엔 무신사 특유의 획일적 무채색 의류를 비꼬는 의도가 담겼다. 방송 이후 패션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기 옷을 올리고 “무신사스럽지는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게시글이 부쩍 늘어나는 등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패션공룡’ 된 무신사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신사의 2021년 매출은 4667억원으로, 전년(3319억원) 대비 40.6% 불어났다. 거래액은 스타일쉐어, 29CM 등 패션 플랫폼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총 2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2019년(9000억원) 대비 2.5배로 급증한 금액이다.무신사의 2021년 매출은 국내 주요 패션 플랫폼인 지그재그(652억원), 에이블리(934억원), 브랜디(1261억원), W컨셉(1000억원)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무신사는 특히 길거리 패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W컨셉 등 여러 패션 플랫폼이 경쟁을 펼치는 여성 패션 시장과 비교되는 점이다.하지만 공룡으로 성장하면서 오히려 놀림감이 되는 역설적 현상도 나타난다. 검은색 와이드 팬츠에 큼지막한 로고가 들어간 맨투맨 티셔츠는 10대부터 30대까지 남성들이 즐겨 입는 이른바 ‘무신사 스타일’이다. 검은색, 회색, 흰색 등 무채색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게 특징이다.
이런 스타일은 최근 들어 부쩍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SNL코리아 방송 이후에 ‘무신사 냄새 안 나게 입는 법’, ‘이 옷 무신사 냄새 나나요?’ 같은 게시글이 수백 개 올라왔다.
○톰브라운도 브랜드 훼손 경험
글로벌 패션업계에는 무신사와 비슷한 경로로 이미지가 훼손된 선례가 상당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대 초반 10대 중·고등학생들이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대거 구매해 입으면서 사회 전반에 과소비 논란이 확산한 적이 있다. ‘톰브라운’과 ‘버버리’도 고가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중반 이후 ‘아무나 입는 급 떨어지는 브랜드’ 이미지가 덧입혀져 인기가 급랭했다.일본에서는 ‘유니클로’와 ‘들키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인 ‘유니바레’라는 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저렴한 유니클로 제품을 입는 것을 남에게 들켜 부끄럽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다.
무신사는 SNL코리아가 풍자 코미디인 만큼 공식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대신 여성패션 분야를 강화하는 전략 실행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유명 걸그룹 뉴진스를 새 모델로 기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