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실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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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경 구글코리아 인사총괄사회 경력이 길지 않았던 시절, 한 후배가 걱정하는 얼굴로 나에게 온 적이 있다. 새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실수로 엉뚱한 버전을 내보냈다는 것이다. 보고를 하러 조직의 리더에게 가는 후배를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 후배는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축하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대(大)실수를 축하합니다. 큰 실수를 했으니 배움도 클 것입니다. 이제 그 배움이 어떻게 우리 조직의 배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주세요.”
그 후배는 ‘캠페인 출시 과정에서 실수를 줄이는 프로세스 구축’이라는 과제를 받아 자리로 돌아갔다. 후배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공포가 배움과 변화의 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나 역시 사람과 조직을 성장시키는 리더십에 대해 한 수 배웠던 기억이 난다.실패나 실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조직에 큰 함의를 지닌다. 실패를 보는 관점은 사람을 보는 관점과도 연결돼 있다. 직원 개개인을 성장 과정에 있는 가능성의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미 완성돼 변화하기 어려운 존재로 볼 것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을 성장하는 존재라고 믿는 조직은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사람을 탓하기보다 문제에 집중하며 지난 과정을 복기한다. 실패와 실수에서 배울 점을 찾고 강점은 칭찬해 더 의식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듣기에 어려울 수 있는 건설적 피드백은 상대가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는 사각지대를 조심스럽게 비춰주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선물을 주듯이 공들여 준비한다. 이런 조직 문화 속에 있는 직원들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도 어려움만을 바라보기보다 그 난관이 어떤 기회와 가르침을 주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꽃은 피지 않았지만 초록 잎이 싱그러워 한 다발 산 식물이 있다. 길어야 몇 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큰 기대 없이 작은 병에 물과 함께 꽂아 뒀는데,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파릇하게 살아있다. 찾아보니 루스커스라는 백합과 식물이다. 특이하게도 잎에서 꽃이 핀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잎에서 뭔가 삐죽이 돋아 있어 올봄에는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성장이 있고, 새로운 생명의 태어남도 있다. 인사(人事)라는 업이 즐거울 때도, 또 한계가 느껴질 때도 나 스스로 묻는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생명을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 조직 안의 생명과 성장의 가능성을 나는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