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元月十五夜(원월십오야), 姜聲尉(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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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조부님 생전 모습>

[원시]
元月十五夜(원월십오야)

姜聲尉(강성위)

春風忽已着簷端(춘풍홀이착첨단)
十五夜窓開未寒(십오야창개미한)
天際月輪斜仄易(천제월륜사측이)
紅塵世上滌愁難(홍진세상척수난)[번역]
정월 대보름 밤에

봄바람이 어느덧 처마끝에 이르러
보름 밤에 창 열어도 춥지를 않네
하늘가 달이야 쉬이도 기울건만
홍진세상 시름은 씻기 어렵구나

[주석]
· 元月(원월) : 정월(正月), 음력 1월. / 十五夜(십오야) : 보름밤.
· 春風(춘풍) : 봄바람. / 忽已(홀이) : 어느새, 어느덧. / 着(착) : ~에 달라붙다, ~에 이르다. / 簷端(첨단) : 처마끝.
· 十五夜窓(십오야창) : 보름날 밤 창문. / 開未寒(개미한) : 열어도 춥지가 않다.
· 天際(천제) : 하늘의 끝, 하늘가. / 月輪(월륜) : 둥근 달, 달. / 斜仄(사측) : 기울다. / 易(이) : ~하기가 쉽다.
· 紅塵世上(홍진세상) : 홍진세상, 인간세상. / 滌愁(척수) : 시름을 씻다. / 難(난) : ~하기가 어렵다.[시작노트]
이번 주 토요일은 입춘이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입춘과 정월 대보름이 연이은 것을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필자가 아득한 옛날에 지었던 시 한 수가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필자에게는 습작기 내지 초기의 작품이 되는 이 시는, 필자가 미혼이던 그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밤에 지은 것이다. 이 시를 얘기하자면 다소 장황할지도 모르는, 시가 지어지게 된 내력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필자는 소년 시절에 조부님과 함께 거처한 날이 손자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부님은 필자가 태어나기 6년 전에 급성 질환으로 실명(失明)을 하신 상태여서, 잔심부름을 해줄 아이가 있어야 했는데 필자가 바로 그 몫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열 살을 조금 넘은 시기부터 자주 조부님이랑 같은 방에서 거처하게 된 필자가 주로 한 일은, 간간이 조부님을 모시고 마실을 다니는 외에,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셨던 조부님을 위해 재떨이를 비우는 일과, 요강을 거름 무더기에 비운 후 수돗간으로 가져가 물을 채워두는 일과, 조부님 친구분이나 손님이 오셨을 때 술을 받아오는[사오는] 것이었다.

조부님께서는 딱히 하실 일이 없어 무료하시거나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실 경우에는 불경(佛經) 구절이나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 등을 반복적으로 외우고는 하셨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필자에게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마침내 필자에게 자장가가 되어주었더랬다. 그리하여 필자가 어쩌다 잠이 잘 안 오면, “할배요. 적벽부 좀 외워 주이소.”라고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만 하다.조부님은 이따금 필자가 선뜻 알아듣기 쉽지 않은 말씀을 들려주기도 하셨는데, 그 많았던 말씀 가운데 유난히 또렷하게 각인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세 가지에게 쫓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세 가지는 돈과 시간과 사람이다. 조부님께서는, 돈이 따라오게 해야지 돈에 쫓기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부득이하게 돈에 쫓기는 수도 있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 같은 것을 당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다음으로 시간에 쫓기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시간에 쫓기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에 쫓기는 경우와 비슷하게 게으름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장 안 좋은 것이 사람에게 쫓기는 거라고 하시면서, 왜정(倭政)이 아닌 지금 세상에는 죄를 지은 것이 없으면 사람에게 쫓길 일이 없으므로 절대로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필자는 오늘 소개한 이 시를 지을 즈음에 조부님께서 그토록 경계하셨던 그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를 지었던 해 이전의 10월에 과외가 끝난 이래로 새해 2월이 되도록 새로운 과외 자리를 찾지 못하여 고정적인 소득이 없었으니, 돈에 쫓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다급한 김에 한 선배에게 번역 일을 졸라서 하청받아 작업을 진행하고는 있었지만, 게을렀던 탓에 납기를 코앞에 두고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대보름 이틀 후에 간신히 말미를 얻어 1주일 정도 납기를 늦추기는 했으나 시를 짓던 그때까지는 하염없이 시간에 후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시를 짓던 그 날에 조부님께 얼마나 죄스럽던지!

여기에 더해 대보름날 밤에 열어둔 창문 아래에서 어느 커플이 앉아 나누는 밀어가 고스란히 방안까지 들려와, 변변한 여자 친구도 없었던 당시 필자에게는 이것까지 하나의 시름으로 들어앉았다. 필자가 시에서 얘기한 “시름[愁]”에는 그렇게 이 세 가지가 담기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밝히지 않는다면 그 “시름”의 내용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시가 비록 초기시이고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시라 하더라도, 적어도 필자가 무병신음(無病呻吟:병도 아닌 데 괴로워 앓는 소리를 냄)한 시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날이 더없이 푹하고 달이 더없이 고왔던 그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필자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새벽 3시를 넘겨서야 전등을 켜고 이 시를 짓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달은 저토록 쉽게 자리를 옮겨가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름은 이토록 사라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회한(悔恨)을, 시로 나타내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하얗게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어제의 일인 듯 또렷하기만 하다.

필자는 그 뒤로도 돈과 시간에 숱하게 쫓기며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사람에게 쫓긴 일은 없었다는 것을 큰 위안으로 삼고 있다. 올 정월 대보름에는 만사 제쳐두고 이제는 헐리고 없는 그 자취방이 있었던 곳 언저리나마 거닐면서 그 옛날 그 시절을 다시 한번 반추해볼 요량이다. 아, 사라지고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여!

이 시는 칠언절구로 압운자는 ‘端(단)’ · ‘寒(한)’ · ‘難(난)’이다.
2023. 1. 31.<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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