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방국가가 적절"…30년 만에 통일구상 바꾼다

한국정치학회 '통일방안' 구체화 보고서 제출
"1민족 1국가, 남북한 내 사회적 다양성 반영 못해
통일 후 내전 치른 '예멘'처럼 통일역진현상 우려"

학계·시민단체에서도 '민족공동체' 현실성 지적돼
헌법은 北 공식국가 인정 안 해 … 정부 "적용 한계"

2월부터 민족공동체통일방안 관련 각계 의견 수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30년만에 이를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정부가 앞서 '연방형 단일국가'를 최종 단계로 하는 통일방안을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정부에 따르면 한국정치학회는 지난달 '사례연구를 통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전방향 구체화' 정책연구용역 보고서를 통일부에 제출했다. 연구는 지난해 9월부터 3달 간 독일·예멘·홍콩·유럽연합(EU) 등의 해외 통일 사례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회는 기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고 있는 통일의 최종 단계인 '1민족 1국가의 단일 국가'가 최적의 모델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94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 △남북연합 △1민족 1국가 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로 구성돼있다. 남북이 대립관계를 청산하고 실질적 교류협력을 실시하는 1단계, 과도적 통일체제이자 남북연합 기구들이 창설·운영되는 2단계를 거쳐 남북 두 체제를 완전히 통합한 단일국가를 수립한다는 구상이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지난 27일 서울정부청사에서 통일부·행안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합동브리핑에서 발언하고있다. 연합뉴스
학회는 이러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실현되더라도 1민족 1국가의 단일국가는 남북한 내의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민족, 통일한국, 민족공동체 등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 번 통일한 후에도 내부 반발로 내전을 치른 예멘처럼 '통합 역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학회는 '연방형 단일국가'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남과 북이 각자 주를 형성하는 형태다. 이는 북한이 1960년대부터 주장해온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고려연방제'와도 유사하다.

학회는 2단계인 국가연합 단계도 더욱 결속력 있는 형태로 구체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최고기구로 남북정상회의, 고위기구로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조절 및 협력만을 논의하는 '협의체'에 불과한 만큼 공동의 정부기구를 조직해 정치적 갈등이나 통일 반대 세력에 적극 대처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기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최종 단계인 '1민족 1국가 1체제'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추후 논의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민족 공동체'라는 개념에 기반한 통일구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초청위원은 지난해 10월 서울대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성찰과 대안모색-발전적 보완인가 전면 수정인가' 학술회의에서 "민족공동체의 '민족'을 혈통적 개념으로 한정할 수 없고 새로운 성격 규정이 필요하다"며 "관행적으로 거론되는 '민족동질성' 회복의 의미를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이러한 보고를 참고해 2024년 새로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헌법은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연방형 단일국가를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적시할지는 불투명하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그간 1국가 1체제가 적절한지 문제 제기는 있었다"라면서도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통일 개념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오는 2월부터 민족공동체통일방안 개선안에 대한 의견을 각계에서 수렴할 게획이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