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프리마돈나'…그녀를 살린 건 노래, 죽인 건 사랑이었다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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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한 칼라스‘프리마 돈나(Prima Donna)’는 이탈리아어로 ‘제1의 여인’이라는 의미다. 주로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을 맡는 소프라노를 가리킨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큰 사랑을 받은 프리마 돈나를 꼽자면 단연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1923~1977)다.
'오페라 역사 최고의 디바' 영예
'10년 연인' 오나시스 배신으로
우울증·약물에 시달리다 죽음에
톰 볼프 감독의 다큐멘터리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2019)는 칼라스의 노래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칼라스의 공연 및 인터뷰 영상, 미공개 회고록 등을 토대로 했다.칼라스의 인생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아리아 제목에 비유된다. 극 중 오페라 가수인 토스카가 부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다. 이 노래처럼 칼라스의 삶은 노래와 사랑이 전부였다.
그리스계 미국인 칼라스는 어린 시절부터 뚱뚱한 외모로 종종 놀림의 대상이 됐다. 뛰어난 재능 때문에 괴로움도 겪었다. 어머니는 칼라스의 천부적인 소질을 알아보고 그에게 혹독한 음악 교육을 시켰다.
다행히 칼라스는 음악을 사랑했고,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했다. 성인이 된 후엔 오페라 무대 연기를 위해 30㎏을 감량했다. 19세에 ‘토스카’의 토스카 역으로 데뷔한 뒤 승승장구했다. 평생 출연한 오페라 작품은 ‘나비부인’ ‘노르마’ 등 46편에 달한다.노래는 칼라스에게 ‘세기의 디바’라는 영예를 안겨줬지만, 사랑은 치명적이었다. 칼라스는 26세에 27년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했지만, 10년 만에 이혼했다. 34세에 만난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칼라스는 10년 동안 연인 관계를 이어온 오나시스와 결혼하길 원했다. 하지만 어느 날 오나시스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던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연인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기분은 어땠을까. ‘토스카’에서 토스카는 연인 카바라도시가 다른 여성과 만난다고 의심하며 큰 슬픔에 빠진다. 칼라스는 그 순간의 토스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오나시스는 결혼 이후 다시 칼라스를 그리워하며 재클린과 이혼하려고 준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칼라스는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리다 54세에 심장마비로 죽음에 이르렀다.누구보다 열렬히 노래하고 뜨겁게 사랑한 칼라스. 그의 노래를 들으면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칼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비망록은 나의 노래 안에 담겨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니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