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기에 더 큰 이익 누리겠다"…적자 감수하고 '삼성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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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쇼크' 돌파 전략삼성전자의 반도체 감산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상당히 컸다. 1위 업체가 감산에 뛰어들면 칩 가격 하락세가 멈추고 업계 전반의 수익성도 회복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경영진도 최근 웨이퍼(반도체원판) 투입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을 검토하며 득실을 저울질했다.
경영진도 감산 저울질했지만…
웨이퍼 투입 줄이는 감산 대신
기술적 감산으로 '초격차' 유지
클린룸 확대 등 50兆 투자 그대로
장고 끝에 나온 결론은 감산이 아니라 투자다. 올해 50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를 단행해 연구개발(R&D)과 생산능력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불황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경쟁사와 격차를 벌리는 ‘성공 방정식’을 이번에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업황 전망은 부정적
삼성전자가 31일 열린 실적설명회(콘퍼런스콜)에서 내놓은 올해 업황 전망은 ‘낙관’보다는 ‘비관’에 가깝다. D램, 낸드플래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이미지센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주요 제품·서비스 분야에서 “고객사의 재고 조정에 따른 수요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정보기술(IT)산업의 수요 부진 여파로 기업들이 반도체를 구매하기보다 쌓아놓은 반도체를 소진하는 데 주력할 것이란 얘기다. “하반기에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전망도 언급됐지만 ‘내부적인 기대’라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삼성 안팎에서 공개된 반도체 관련 통계에서도 긍정적인 수치를 찾기 어렵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월 PC용 D램 범용제품 가격은 전월 대비 18% 떨어진 1.81달러로 집계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반도체 전문가들을 인용해 “D램과 낸드플래시의 1분기 가격 하락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할 것”이라고 보도했고 블룸버그는 “3~4개월치 메모리반도체 재고가 쌓여 있다”고 경고했다.
R&D와 시설투자 포기 안 해
보통의 반도체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를 꺼낸다. 웨이퍼 투입량을 조절해 공급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이다. 지난해 10월께부터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일본 키오시아 등 주요 메모리반도체 기업이 줄줄이 투자 축소와 공급량 조절을 발표했다. 가격을 방어해 손실폭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경영진도 인위적 감산 카드를 외면한 건 아니다. 지난 주말까지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은 라인 효율화 작업 등을 통해 자연적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기술적 감산’과 ‘투자 규모 유지’로 나왔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감산 강도를 저울질하되 미래를 위한 R&D와 시설투자를 포기하진 않겠다는 의미다.수익성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최첨단, 고사양 제품으로 시장에 대응할 계획이다. 메모리사업부는 차세대 규격 제품인 ‘DDR5’의 서버·PC용 제품을 준비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팹리스 역할을 하는 시스템LSI는 차량용 통합칩셋(SoC) 공급 확대, 중저가 스마트폰용 칩셋 판매 등에 나설 예정이다. 파운드리사업부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활용한 3나노 2세대 공정, 2나노 1세대 공정을 통해 고객사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생존’ 위한 합병 속도 낼 듯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감산을 기대했던 경쟁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생산량을 크게 줄이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면서 공급 과잉 해소와 반도체 가격 반등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날 SK하이닉스와 대만 D램 업체 난야의 주가가 각각 2.43%, 4.15% 하락한 데도 이런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시장에선 현재 진행형인 일본 키오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등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생존을 위한 ‘물리적 결합’이 가시화할 것이란 얘기다.황정수/배성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