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성과급 잔치' 제동 건 이복현

"유동성 위기 겪는 일부 회사
배당금 지급 더 신중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서울 도렴동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보험회사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혁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증권사에 성과급과 배당금 지급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했다.

이 원장은 31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부동산 PF 및 단기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증권사는 임직원의 성과급 지급과 현금 배당 등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금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으면서 일부 증권사가 성과급이나 배당금 지급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경계하고 나선 것이다.이 원장은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증권사는 부동산시장 상황과 리스크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성과보수를 합리적으로 산정·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감독당국도 증권사의 부동산 PF 관련 성과보상 체계 적정성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배당과 관련해 이 원장은 “증권사 배당 등 주주환원책은 원칙적으로 개별 기업이 경영상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단기 금융시장 경색 국면에서 산업은행 등 외부로부터 유동성을 지원받은 일부 증권사가 배당 등으로 유동성에 부담을 주는 일이 없도록 책임 있고 사려 깊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과급 미리 지급한 증권사들 PF 등 손실 발생하면 환수 검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증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성과 보상 체계도 점검하겠다고 했다. 특히 증권사의 성과급 이연제도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졌다.성과급 이연제는 성과급의 40% 이상을 향후 3년간 나눠 지급하는 제도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원(상장회사는 2조원) 이상 증권사는 성과급 이연제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반면 자산 5조원 이하 증권사는 이연 여부를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이 기준에 속하는 증권사는 BNK투자증권, 케이프투자증권, 유화증권, DS투자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상상인증권, 흥국증권 등이다. 이 중 일부 증권사는 성과급 이연제를 부서별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거나 아예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성과급을 이미 작년에 지급했는데 올해 부동산 PF 자산이 부실화되면서 손실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회사별로 성과 보수가 어떻게 지급되고 이연 체계는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금감원은 성과급을 지급했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환수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 채택 여부도 점검할 계획이다. 클로백 제도는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연 지급할 금액에서 손실액만큼 삭감하거나 이미 지급한 금액을 환수하는 식이다. 성과가 있으면 보상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잘못이 생겼을 때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금감원이 이 같은 점검에 나선 이유는 최근 증권업계의 부동산 PF 관련 위기를 두고 도덕적 해이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증권업계 안팎에선 부동산 PF 전문 인력이 리스크 관리보다 단기적 성과에 집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을 계기로 증권사들이 불투명한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서형교/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