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는 어쩌다 세계 최대 '빌런 게임사' 됐나 [안재광의 대기만성's]

리니지 게임 하나로 24년 간 14조 매출
'현질' 유발하는 과금체계에 사용자 이탈
린저씨조차 등 돌리자 매출·이익 급감
한국 게임산업 전체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엔씨, 신규 게임 TL 내놓고 반등 모색할 듯


▶안재광 기자
게임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스타크래프트를 꼽으면 40대 이상 분들일 것 같고 디아블로, 마인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심즈 이런 게임들은 2000년대 나왔으니까 밀레니얼 세대가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아, 갤럭시, 버블버블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오락실 고전 게임을 좋아하실 수도 있죠. 시대와 세대를 대표하는 게임이 각각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게임은 시대도 세대도 초월했습니다. 1998년 나왔는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게임 차트 순위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바로 리니지입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하나로 열 자식 안 부럽죠. 한국 최고 게임 회사가 됐고 단일 게임으로 가장 많은 매출을 거두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요즘 큰 위기를 맞고 있는데요. 이 또한 리니지 때문입니다. 우선 리니지의 수익모델, 그러니까 게임 하면서 돈을 써야 하는데 이게 도를 지나쳐서 그동안 리니지를 가장 아끼고 돈도 가장 많이 썼던 린저씨라고 하죠, 리니지 하는 아저씨들이 이탈하고 있습니다. 욕도 무진장하고요.
더 나아가 엔씨소프트 주가가 폭락하고 한국 게임 산업 경쟁력을 리니지가 저해하고 있다. 이런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리니지 뒤를 따라서 많은 한국 게임사들이 리니지와 비슷한 성격의 게임을 줄줄이 내놨고 이게 한국 게임의 간판이 됐는데, 이 간판을 내릴 때가 됐다 이런 시대적 요구가 생긴 겁니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자, 주식 시장 최고의 스타였던 엔씨소프트가 어쩌다가 국민 빌런 게임사가 됐어요. 이번 주제는 리니지 덫에 걸린 엔씨소프트입니다.
리니지 안 하는 분들도 보신 적은 있죠. 시리즈가 많이 나와서 그래픽도 좋아지고 조금 달라지긴 했는데, 기본은 비슷해요. 반지의 제왕 같은 세상에 들어가서 막 싸우는.
리니지 같은 게임을 MMORPG라고 하는데, MMO는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온라인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접속해서 하고,
RPG는 Role Playing Game. 기사, 법사 같은 역할을 맡아 퀘스트라고 임무를 수행하거나, 다른 사람하고 전투를 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 핵심이 뭐냐면, 전투 능력을 높이는 것이에요. 레벨이라고도 하죠. 뭐라 부르든. 이 전투 능력이 높아야 다른 캐릭터와 싸울 때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능력치를 높이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점이에요.
엔씨소프트는 원래 한 달에 일정 금액 월 2만9700원을 내야 리니지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이때 까지만 해도 열심히 게임만 하면 레벨도 높이고, 웬만큼 강해지는 게 가능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엔씨는 정액제를 없애요. 2019년이었는데. 게임은 공짜로 하고 강해지려면 아이템을 돈 내고 사라. 부분 유료화로 전환합니다.
게임 하는 사람 입장에선 처음엔 좋아 보이죠. 월 2만9700원 안 내니까. 그런데 게임 하다 보면 정액제보다 훨씬 돈을 많이 쓰게 됩니다. 캐릭터가 강해지려면 사냥을 무진장해서 레벨을 높이거나, 장비와 스킬을 돈 주고 사야 하는데. 현질, 그러니까 돈 주고 사는 게 훨씬 쉬워요. 사실 현질 안 하면 캐릭터가 강해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논란인데, 엔씨는 한 발 더 나가요. 뽑기 시스템을 도입해요. 뽑기가 뭐냐면, 아이템을 돈 주고 사는데, 뽑기처럼 뭐가 당첨될 지 모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100만원을 주고 뽑기를 하는데, 5만원, 10만원, 1000만원짜리 장비 중의 하나가 나오는 겁니다. 1000만원짜리 장비를 뽑을 확률은 10%.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하죠. 안 하면 되는데, 1000만원이 걸려 있으니까 이거 보고 계속하는 거예요. 로또가 그렇잖아요. 확률은 얼마 안 되지만 1등 해서 한 방에 몇십억원 당첨되려고 하는 거지, 5만원, 10만원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로또, 아니 뽑기로 돈을 쓰게 하면서 한 사람이 수 천만원 혹은, 수억 원을 쓰는 게 리니지에선 흔합니다. 리니지 안 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이 게임의 목적이 강해지는 데 있다고 했잖아요. 강해지면 게임 안에서 거의 신처럼 군림할 수 있어요. 이걸 자랑하고 과시하고. 경쟁에서 이겼다는 만족감을 주는 게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안 했으면 안 했지, 리니지를 하게 되면 우선 엄청나게 강해져야 해서 돈 무진장 퍼붓게 되고. 그렇게 돈 퍼부은 사람이 잔뜩 리니지 안에 있으니까 이들끼리 또 경쟁이 붙어서 또 돈 쓰게 되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시스템이냐 하면, PC 게임이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 게임 중에서 최근 1년간 1000만개 넘게 팔린 게임이 딱 세 개가 있는데요 매출이 6000억에서 8000억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엔씨는 리니지 시리즈로 작년 1년 동안에만 1조6000억원가량의 매출을 거뒀습니다. 엔씨는 리니지 하나로 24년간 누적 매출이 14조원을 넘겼어요. 단일 게임으로 이 정도 번 것은 국내에선 당연히 없고, 해외에도 아마 없을 겁니다. 엔씨는 게임도 잘 만들었지만, 천재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낸 거죠.
덕분에 매출이 2020년 42%나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거의 두 배나 급증했습니다. 주가도 물론 엄청나게 뛰었죠. 여기까지만 보면 어쨌든 회사 입장에선 돈 많이 벌었으니까 해피엔딩 같은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연히 문제가 있겠죠.
우선 리니지 스타일로 계속 결제를 유발하는 게임을 계속 내놔요. 돈 내야 이긴다 Pay to Win(P2W) 시스템의 무한 반복.
대표적인 게 2021년 5월 나온 트릭스터M. 이 게임은 린저씨 말고 10대, 20대 젊은 사람을 타깃으로 MMORPG 맛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취지로 개발이 됐는데요. 그래서 귀여운 리니지로 불렸어요. 근데 이 게임은 돈 내고 아이템 사도 리니지만큼 효용이 없고 사냥도 잘 안됐어요. 그냥 돈만 뜯어간 거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블레이드&소울2, 리니지 버금가는 히트작 후속 작품에도 리니지 라이크, 리니지와 비슷하게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또 실패합니다. 엔씨가 적당히 해야 했는데 욕 먹어도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비슷한 게임을 계속 내놔요.
더 큰 문제가 있는데. 엔씨 매출에 가장 기여한 린저씨들이 이탈합니다. 사실 뭐, 가볍게 리니지 하는 그러니까 돈 잘 안 쓰는 사람들은 안 해도 엔씨 입장에선 크게 상관없어요. 근데 린저씨는 달라요.
현질 엄청나게 하고, 하루종일 게임 돌려서 엄청나게 충성도가 높은 헤비 유저들이 들인 돈이 아깝다고 시위합니다. 뽑기 확률을 조작하는 것 아니냐, 또 뽑기 룰을 왜 자꾸 바꾸냐, 너네 못 믿겠다. 이렇게 트럭 시위를 해요.
이게 엔씨뿐 아니라 다른 게임사들로도 불똥이 튀어서 리니지 방식의 핵과금, 이걸 반대하는 시위로까지 번집니다.
게임 개발 또한 산으로 가죠. 엔씨가 게임을 개발할 때 헤비 유저들, 린저씨에게 너무 휘둘려요. 회사 입장에선 돈 수억 쓰는 사람들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게임의 스토리, 그래픽 이런 게임성 따위는 안 중요해지고. 무한 사냥하고, 아이템 사고. 그런 식의 게임 전개가 후속 게임에서도 반복돼요. 게임이든 실제 세상이든 기득권은 좋아진다 해도 바꾸는 게 싫은 것 같아요.
이 탓에 엔씨 이익이 2021년 반토막 났고,
100만원 넘었던 주가도 반토막이 났습니다. 지난해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이 전년 대비 10%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2014년 이후 성장만 하다가 처음 매출이 꺾였습니다.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리니지 같은 게임 탓에 게이머들이 이탈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맞는 것 같아요. 모바일 게임의 절반이 리니지 같은 MMORPG 장르입니다.
그럼 엔씨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리니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도록 게임 완성도를 높이고, 그러면서 리니지만큼 돈 엄청 안 써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 되도록 하겠다. 대충 이런 구상 같습니다. 엔씨가 얼마 전에 TL 이란 게임 영상을 공개했는데, TL은 쓰론&리버티(THRONE AND LIBERTY) 약자입니다
김택진 대표는 이 게임을 직접 소개하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플레이 포 올을 향해 개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돈 많이 내는 헤비유저는 보상을 충분히 해주고, 적게 내도 라이트 유저도 게임을 재밌게 하도록 개발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다른 말로 하면 1인당 결제액이 감소하는 것은 감수하겠다, 대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겠다. 천 명이 1억원 결제해서 1000억원 매출 하나, 1000만명이 만 원 결제해서 1000억원 매출하나. 결국 같은 것이란 거죠.
그래서 지금까진 스마트폰 위주였는데, 콘솔 게임, 플레이 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같은 게임기에서 할 수 있도록 개발하겠다. 콘솔은 북미, 서구권에서 많이 하죠. 새로운 해외 사용자를 확보하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물론 콘솔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존의 PC, 그리고 스마트폰에서도 할 수 있게 하겠죠.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하고 현질 유발은 조금 할지 봐야 알겠죠.
우선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이 게임을 해야 과금을 조금 해도 매출이 유지될 텐데, 요즘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죠. 중국 게임 회사들이 리니지 비슷한 게임을 지금은 너무나 잘 만들어요. 굳이 TL 아니어도 돈 조금 내는 게임이 많습니다. 또 MMORPG 장르에서 엄청나게 센 게임도 수두룩합니다.
TL 출시 일정쯤에 세계적인 명작 게임 블리자드의 디아블로4가 나올 예정인데요. 전작인 디아블로3는 잘 못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3000만장 이상 팔렸습니다.
또 일본을 대표하는 RPG 게임 파이널판타지, 16번째 작품도 오는 6월에 나올 예정인데요. 이 게임은 2020년 11월 기준 시리즈 누적 판매량이 1억5900만장에 달합니다. TL의 대진 운이 좋진 않아요.
과금에 대한 평가는 유저들은 별로 안 좋아요. 뭐 바꿔봐야 어디 가겠느냐. 말장난 하는 거다. 이런 식의 냉소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TL이 더 리니지(The Lineage)의 약자란 말까지 나옵니다.
근데, 증권가에선 아마 핵과금은 바뀔 것이다, 그래서 TL이 리니지처럼 떼돈 벌 진 못할 수 있다, 돈 조금 포기하고 과거 게임 명가로 복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엔씨도 리니지의 유산은 이어받으면서 리니지로 불리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엔씨소프트뿐 아니라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회사들, 예를 들면 넥슨,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위메이드, 크래프톤 등등 많은 게임 회사들이 대부분 이용자 감소와 새로운 히트 게임의 부재, 이에 따른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데요.
한국 게임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질, 결제를 과도하게 유발하는 시스템은 뭔가 변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탕탕특공대 같은 캐주얼 게임, 가볍게 할 수 있는 게임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탕탕특공대의 이용자당 월 매출은 6500원 수준으로 리니지M의 100분의 1 수준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매출은 3분의 1 수준으로 꽤 많은 돈도 버는데요.
저변만 확대하면 게임회사도 충분히 낮은 과금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엔씨소프트, 돈 없는 사람도 재밌게 할 수 있는 게임 선보일지, 눈여겨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