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토종 플랫폼이 글로벌 기업 되려면

공정위 '플랫폼 심사지침' 제정
규제보다 시장경쟁 유도해야

美브로드컴의 '갑질 혐의'
해외 플랫폼 독과점 면밀히 관찰
국내 기업과 같은 잣대로 규제를

김도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과점 남용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그 심사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번 심사 지침은 기존 전통산업 중심의 심사 기준을 온라인 플랫폼 산업에 맞게 새로 마련해 추가한 것이다.

플랫폼산업은 전통산업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다면(多面) 시장에서 여러 이용자 집단을 연결해 그들 간 상호작용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네이버 쇼핑은 물품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배달의민족은 음식점과 소비자를 연결해 상거래를 중개하는 식이다. 다면 시장의 상호작용에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다. A 집단 이용자가 늘어나면 플랫폼을 통해 연결된 B 집단 이용자가 얻는 편익이 증가해 그 집단 이용자가 늘어나고, 이는 다시 A 집단 이용자의 편익을 증가시킨다. 배민에 입점한 음식점이 늘어나면 소비자는 더 다양한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어서 좋고, 이에 따라 배민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배민에 입점한 음식점 매출이 증가하는 식이다.다면 시장 네트워크 효과는 산업 구조의 변화를 초래했다. 시장을 새로 개척한 플랫폼 사업자가 네트워크 효과를 이용해 시장을 독점하고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구글, 아마존 등이 거대 기업이 되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점과 거대화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필요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지난해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에 관한 법을 제정했고 한국은 법을 대신해 심사지침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심사지침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 남용행위를 규정하고 있어 온라인 플랫폼 사업 규제의 불확실성을 완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잘못된 규제를 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주의가 요구된다.

플랫폼 시장에서는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소수의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용자 편익을 증가시키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다. 시장 내 경쟁(competition in the market)보다는 시장을 개척하고 차지하기 위한 경쟁(competition for the market)이 중요한 이유다.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는 시장 내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2012년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를 승인했지만, 이 결정은 페이스북을 대체할 새로운 소셜미디어 플랫폼 기업의 성장을 막았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다. 공정위는 시장 내 경쟁에 중점을 둔 기존 규제를 지양하고, 시장을 위한 경쟁을 유도해 더 많은 플랫폼 기업이 출현하고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돼야 한다.

새로운 플랫폼 출현과 성장을 위해서는 플랫폼 시장 규제가 거대 독점 기업에 국한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시장가치가 6000억달러 이상인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만 법(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거대 기업만 규제 대상이 된다. 반면 이번 심사지침에는 적용 대상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어 공정위가 사안별로 시장을 어떻게 획정하고 독점적 지위를 규정하느냐에 따라 많은 플랫폼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플랫폼산업은 이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산업이 됐다. 20세기 한때 세계 경제를 호령하던 유럽과 일본이 침체에 허덕이는 반면 약화할 것 같던 미국이 다시 성장 가도를 달리는 원인 중 하나는 플랫폼 기업의 성장일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일부 시장에서 외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에 맞설 수 있는 토종 플랫폼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토종 플랫폼 기업의 성장과 세계화를 방해하는 외국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남용행위를 세밀히 관찰하고 최소한 국내 기업과 같은 잣대로 규제해야 한다.

미국 브로드컴의 삼성전자 갑질 혐의에 대해 지난달 9일 공정위는 아무런 제재 없이 브로드컴이 상생지원금을 마련하는 안에 잠정적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공정위가 외국의 거대 기업에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