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7년 만의 '광고자유구역'…밤이 더 빛나는 도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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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올해 자유구역 추가 선정개성 있는 현대 도시에는 색과 빛이 넘친다. 멋과 맛, 볼거리도 많은 글로벌 대도시는 밤이 화려하다. 어둠이 내리면 더 빛나는 타임스스퀘어, 샹젤리제 거리가 없는 뉴욕과 파리가 가능하겠나. 상하이 푸둥·와이탄의 형형색색 야경도 여행객을 설레게 한다. 한국은 어떤가. 세계 6~8위의 거대 도시 서울의 밤은 빛나고 있나. 호불황, 에너지 절감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30개나 되는 한강 다리부터 그게 그것이고 도심은 여전히 칙칙하다. 시민 정서를 북돋우고 외국인을 끌어들일 서울의 참 매력은 무엇인가. 전국의 다른 도시들은 또 어떤 개성으로 관광객을 유인하며 발전 트랙을 강구하고 있나.
13% 성장 시장의 IT경연장
'新 문예공간'서 상상력 발휘해
한국판 타임스스퀘어로 '매력한국'
관광자원, 자연·유산서 인공·문화로
최첨단 홍보가 국가 새 경쟁력
이번엔 非서울 가산점으로 우대도
허원순 논설위원
부처별 2023년 업무보고에서 행정안전부의 올해 추진 목록을 살펴보니 눈길이 확 가는 대목이 있다.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 한 곳을 추가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덩치 커진 국내 도시에 ‘광고 문화’의 옷을 입혀나가겠다는 취지다. 수십 가지 계획 리스트에 묻혀 언론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뒤늦은 만큼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사실 ‘옥외광고물 관리법’과 그 시행령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난립하는 외부 광고물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관점에서 생긴 법이지만 시시콜콜 규제투성이다. 한국판 타임스스퀘어는 아예 나올 수 없게 돼 있다. 광고물의 마구잡이 설치나 안전 문제도 있지만, ‘과도한 규제 천지’라는 지적에 따라 2016년 법 개정으로 도입한 게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 제도다. 그렇게 서울 코엑스 일대가 5 대 1의 치열한 경쟁 끝에 선정돼 한국의 야경 명소로 변해가고 있다. 런던 피카딜리서커스, 상하이 황푸강변 같은 세계적 관광명소의 현란한 색채를 벤치마킹한다는 것인데, 그래도 아직 멀었다.
행안부 방침을 보면 10월에 ‘제2의 영동대로’로 광고자유구역을 추가 선정하고, 이곳에선 네거티브 규제(제한된 금지조치 외 모두 허용)로 가겠다고 한다. 바람직하다. 디지털 기반의 첨단 옥외광고는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13%씩 성장하는 신산업이다. 한국지방재정공제회가 집계·추정한 국내 옥외광고 통계를 보면 이 부문 산업 규모는 2020년 3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후 3년간 이 선에서 맴돌고 있다. 불황에 유망투자 분야 한 곳을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미래 지향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볼 만하다.
국내외의 남녀노소 인파가 몰려드는 요지는 첨단·명품 브랜드의 광고 격전지기도 하다. 현란한 조명 기술과 첨단 디자인 기법이 총출동돼 멋진 분위기를 조성한다. 청년세대엔 미래를 선보이는 창의·혁신 공간으로 다가설 것이며, 외국인에겐 디지털·IT·AI의 ‘다이내믹 코리아’ 이미지를 각인시킬 것이다.그런 차원에서 보면, 새해맞이 행사 같은 것도 이젠 좀 바뀔 때가 됐다. 언제까지 두루마기 차림의 사람들이 종을 치는 보신각에 모여 새해를 맞을 텐가. 수십m 고선명 LED 전광판이 고층 외벽에서 번쩍이고, 홀로그램·증강현실을 구현하는 입간판 위로 수백 대 드론이 현란한 군무를 연출하는, 코엑스 영동대로에서 아이돌 그룹과 신세대가 함께 환호작약하는 제야도 괜찮지 않을까. 현대감각에 미래지향적이지 않나. ‘프리 광고존’에 기업광고면 어떻고 공익광고면 어떤가. 다국적 해외기업 홍보 영상도 좋다. 그럼에도 보신각 타종이 좋다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도 유지하면 된다. 시민의 선택권은 언제나 다양한 게 좋다.
행안부가 광고자유구역을 추가 선정할 때 두 가지를 특히 숙고하면 좋겠다. 먼저 이번에는 비(非)서울지역에 가점을 부여하고 우선 기회를 주는 방안이다. 그렇게 지역 간 멋 내기 경쟁을 슬쩍 유도하는 것도 좋다. 지방에서도 부산 같은 광역시의 번화가만 볼 게 아니라 수원 고양 용인 창원 등 4대 특례시도 별도 후보지에 올려 인구 100만의 밀리언시티가 멋 부릴 기회를 주면 어떨까. 굳이 한 곳만이 아니라 도시 크기별로 두세 곳을 더 선정한들 문제 될 것이 없다.
정부가 한참 만에 길을 터는 데 지방자치단체가 불필요한 간섭으로 걸림돌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교통·보행·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자유 지역에서 지자체는 말을 줄이는 게 제도 취지에 부합한다. 이참에 어두운 도시의 살풍경을 확 털어내자. ‘자연·유산’보다 ‘인공·문화’ 쪽으로 관광자원의 개발 축을 바꿔볼 때도 됐다. 자유광고 지대에서 IT 한국의 최첨단 홍보 기법이 한껏 실현되도록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밤이 더 빛나는 도시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