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1800년대 미국에도 있었다?[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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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제에서 중앙은행의 독점적인 화폐 발행과 공급은 당연해 보이나 이들이 발권력을 독점하게 된 것은 겨우 19세기에 들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민간은행에서도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는데, 미국의 경우 자유은행시대(1837~1863년)가 그러했다. 민간은행에 의한 화폐 발행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던 미국의 자유은행 시대는 현재 민간기업의 주도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연상시킨다. 기술의 발전으로 화폐의 형태는 종이에서 디지털상으로 옮겨갔으나 민간 발행 화폐라는 본질적인 유사성을 지니는 만큼 자유은행 시대의 사례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8000개 은행이 돈 찍어내던 美 자유은행시대

자유은행시대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이 준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던 제2미국은행을 폐쇄하면서 시작됐다. 대형 은행에 집중된 권한과 영향력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 정부들은 은행 인가기준을 완화해 은행 설립을 자유화하고, 은행이 자체적으로 화폐(은행권)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은행업 진출이 수월해진 만큼 1860년에 이르러서는 자체 화폐를 발행하는 은행의 수가 무려 8000개에 달했다.

자격 미달인 은행들이 우후죽순 설립되고 수천 가지의 민간 화폐가 유통됨에 따라 뱅크런과 은행 파산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금융시장의 혼란을 끝내기 위해 미국 정부가 은행 인가기준을 강화하고 민간은행의 자체적인 화폐 발행을 금지하게 되면서 자유은행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 정부의 인가를 받은 은행들이 단일 화폐를 발행하는 연방인가 은행제도를 거쳐 1913년 중앙은행인 연준이 설립됐다. 비로소 미국의 화폐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발행과 공급을 독점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하게 됐다.

美 자유은행시대와 스테이블코인은 닮았다

자유은행시대는 시기적으로 미국의 철도 붐(1840년대)과 골드러시 시대(1848~1855년)와 맞닿아있다. 자유은행시대 당시 민간 화폐로 공급된 유동성이 철도 붐과 골드러시 시대를 직접적으로 견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철도 회사와 같은 민간 기업들에 자금 조달의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철도와 운송, 통신 등 다양한 영역의 회사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사업을 확장했다.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는 추후 골드러시로 대변되는 서부 개척 시대의 기반이 됐다.

자유은행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민간 부문의 화폐 발행이 미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빈번한 사기 사건, 뱅크런, 은행 파산이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은행 인가에 대한 규제가 최소화된 탓에 적격하지 못한 은행들이 설립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민간 화폐가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점 때문이었다. 화폐 가치에 대한 의문이 언제든 제기될 수 있다는 것, 그 결과 런(run)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과거 자유은행시대의 발전 양상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민간기업이 그 어느 규제에도 구애받지 않고 블록체인 세상에서 통용되는 화폐인 스테이블코인을 자체적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점,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새롭게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 불안정한 메커니즘에 의해 은행 파산과도 같은 스테이블코인 붕괴가 발생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더 나아가 자유은행시대 당시 발행된 민간 화폐가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하며 경제 성장을 불러왔던 것처럼, 스테이블코인도 이와 유사하게 가상자산 시장을 활성화하고 확장하는 데 일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과거 민간 화폐가 가졌던 구조적인 한계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주로 가치를 보증하는 담보가 충분한지의 여부와 직결된다. 담보 관련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스테이블코인의 유통량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다.

자유은행시대와 다른 건 "안전한 담보"

정부의 방관 속에서 시장의 손에 온전히 맡겨지며 금융시장 혼란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던 자유은행시대와 달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제도권 내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년 전부터 특정 요건을 갖춘 기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센스를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또한 이들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안전자산 위주의 담보로 뒷받침되고, 해당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바 있다.각국 중앙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도입을 추진하면서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이 밀려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CBDC에 의해 점유율을 위협받을 것으로 예상되나, CBDC의 잠재적 리스크와 정책적인 고려 사항 등을 비추어볼 때 근시일 내에 CBDC가 발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암호화폐 시장과 맞물려 성장할 전망이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담보가치가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것이 리스크 차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크로스앵글은…

크로스앵글은 크립토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 '쟁글' 운영사다. 쟁글은 글로벌 가상자산 공시, 평가와 더불어 정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가상자산 투자 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주기 위해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