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고 삭막한 이혼의 풍경…신간 '결혼진술서'

이혼 과정 담은 독특한 에세이
"결혼진술서 써 오세요. "
이혼을 결심하고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들은 말이었다.

오랜 시간 이혼을 심적으로 준비했지만 '결혼진술서'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게 뭔데요'라고 담당 변호사에게 물었다. 문화평론가 김원이 쓴 '결혼진술서'(파람북)는 이혼의 삭막한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누구나 결혼하고, 이혼할 수 있지만 결혼 과정과는 달리 이혼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일쑤다.

결혼만큼 주변에 알릴 필요도 없고, 이혼을 치부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 때문이다. 저자는 이혼 과정에 대해 A부터 Z까지 소개한다.

일단 결혼진술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한다.

결혼진술서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갈등이 시작됐으며 어쩌다 파탄에 이르게 됐는지를 제삼자도 일목요연하게 알아보도록 써야 하는 일종의 '설명문'이다. 또한 결혼 실패를 자인하며, 둘은 해결 못 할 혼인 관계 해소를 법의 이름으로 판가름내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다.

결혼진술서를 쓰는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가장 미쳐버릴 것 같을 때 가장 이성적인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음을 추스르며 글을 시작한다.

"해서는 안 되는 결혼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만난 우리는 연애를 5년이나 했지만, 그는 결혼 의사가 없었고 나는 오랫동안 결혼하자고 조르는 형국이었다.

"
결혼 전은 대체로 꿈결 같은 상태지만, 막상 시작하면 "원망"이 싹트는 사이가 된다.

법정에서는 그렇게 쌓인 원망들이 서로 부딪힌다.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처가 남는다.

특히 양육권, 보육비, 재산 분할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거세다.

심적으로 버티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 문제다.

저자는 "똑똑한 내 자식이 희망을 서서히 놓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며 "그것이 부모로서 받는 가장 큰 형벌 같다"고 말한다.

"타개책은 하나뿐이다.

아이를 맡은 쪽 부모가 우선 똑바로 서야 한다.

"
저자는 연애 중인 이들에게도 당부한다.

'연애 진술서'를 한번 써보라고. 글로 서술할 수 없는 엉망진창인 구간이 있는 상태라면, 잠시라도 관계를 멈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진술하기 애매한 관계의 에피소드와 이야기 속에는 분명 함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지점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래 위의 집처럼 순식간에 전부 허물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1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