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시들, 우주의 시간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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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홍 시인 첫 시집 리뷰<모르페우스 출근하다>(밥북)는 김지홍 시인의 첫 시집이다. ‘다시 4월 봄비’ ‘모르페우스 출근하다’ 등 근작부터 ‘시간의 침묵’ 연작, 80년대 ‘우리 시대의 사랑과 절망과 자유와 진보와 보수와 통일’에 대해 생각하던 청년 시절의 시까지 60여 편을 담았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미련해서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한 시들이다. 시인이 버리지 못한 시들에는 삶의 고통, 부채감을 견디는 태도가 드러난다.
“일용할 한 줌 희망을 사려고 시장에 갔습니다 좌판에 내팽겨쳐진 고통 한 바구니로는 택도 없었어요 엘뤼아르 씨의 흰 빵은 진즉 다 팔렸고 도스토옙스키 선생네 시든 파 세 뿌리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모두 어림없습니다 시간을 탕진한 자 얼마나 더 만근의 바윗돌을 옮겨야 할까요 나훈아 씨네 홍시 하나 달랑 들고 왔습니다”(죄 많은 사람) 시간을 탕진한 자는 바로 살아 있는 자. 고통 한 바구니 사서는 택도 없는 만근의 바윗돌을 옮겨야 한다. 일용할 한 줌 희망을 사려고 하지만 위대한 시인과 소설가의 좌판은 텅텅 비었거나 시들어 찾는 사람 없고 잘 익은 홍시 같은 유행가로 위안 삼을 뿐이다.
삶을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은 지금 여기에서 곧잘 우주의 시간으로 확장한다.
“종로2가 맥도널드 앞에서, 8시 17분을 가고 있었다/8시 17분 저 건너에서 X1과 X2, X3/X떼가 펄럭이며 왔고… 머물고 있으므로 꿈꾸는,/살다 보면 장엄하게 우주의 시간으로 날아가는/8시 17분도 있을까…”(시간의 침묵 1) 자본주의가 창안한 효율적 사업 모델인 프랜차이즈 매장 맥도널드에서 시급으로 환산되는 8시 17분은 하나의 ‘엑스트라가 되어’ 통과할 뿐이지만 시인은 장엄한 우주의 시간을 그린다.
‘아무것도 죽어주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겨누고 쏘던’ 청년은 ‘치욕스러운 밥의 세계로 편입’한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깨어 있기를 고집한다. ‘입춘’에서 뼈아픈 후회가 켜켜이 얼어붙은 겨울 강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쩡쩡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 ‘고장 난 세계’에서 3년째 귀에 들어앉아 사는 매미가 사용연한을 다한 달팽이관을 통해 ‘집중하라고 일하라고 혁명하라고’ 어딘가로 쉴 새 없이 삐이이이 보내는 신호를 수신하는 것처럼.
삶을 직시하는 속에서 드물게 여유와 자조 섞인 유머도 묻어나온다. ‘요행’도 순리대로만 바라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다 “달팽이의 질주와/지구의 운행 속도를 생각하면/ 멍청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꼭지가 마르고 아귀힘이 다하면 놓아주겠지/오늘 또 간다//부지런한 아파트 경비원이 홀랑 다 따갔다”는 ‘어리석은 사람’이 그런 시다.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