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세 지원 정책 바꿀 때 됐다

깡통전세·보증보험 악용 빈발
주거 지원은 월세·자가에 초점

윤참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전세는 전세금이라는 명목 아래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계약 기간 동안 무이자로 빌려주는 대신 월세를 내야 할 의무를 면제받는 한국의 고유한 제도다.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환매조건부채권의 성격을 띠는 사적 금융에 해당한다. 이런 전세 제도는 월세와 자가로만 이뤄진 여타 선진국의 주거 행태와 큰 차이점을 보인다.

과거 제도권 금융의 가계 신용공급이 부족하고 주택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던 시기에 전세 제도는 집주인이 개인 간 사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세입자에게는 주거비를 낮추는 역할과 목돈 마련을 통한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내 집 마련의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근래에는 집값 상승으로 전세금을 자력으로 마련하기 힘들어진 세입자가 제도권 금융 대출을 이용해 전세금을 조달하기 시작하면서 거래구조가 복잡해졌다. 이에 더해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 정책의 일환으로 전세대출 한도를 확대하고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이지 않도록 하는 보증보험까지 제공해 서민들이 낮은 금리로 목돈을 빌릴 수 있게 지원했다.정부의 전세 지원 정책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작용을 야기했다. 우선 전세대출 확대는 세입자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전세금을 보다 쉽게 마련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전세자금 및 전세 수요가 증가하고 전셋값이 오르며 전셋값과 매매가의 차이를 좁혀 주택 투자자들이 소액의 투자금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소위 갭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지난 주택가격 상승기에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차입 제한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금융을 우회한 전세 거래를 통해 부동산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몰리면서 부동산 경기의 진폭이 확대돼 신용위험이 커진 측면이 있다.

한편 전세대출이 보증기관의 보증을 기반으로 이뤄질 경우 금융회사가 집주인의 신용위험을 보증회사에 전가할 수 있으므로 관대하게 대출 심사를 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소위 깡통전세가 발생하는 일이 크게 부각됐다. 빌라왕 사건에서 보듯이 전세금 보증보험은 전세 사기 일당에 의해 악용됐다. 특히 보증 한도가 공시지가의 150%까지 높아진 현 제도 아래에서 세입자는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들이게 됐으며, 보증보험으로 인해 세입자와 금융회사가 보증금 상환의 안정성을 감시할 유인이 크게 감소해 부실한 전세 계약이 크게 양산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대신 갚아준 보증금이 최근 3년 새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세 지원 정책은 정부가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개입했지만 나쁜 결과를 초래한 일종의 정부 실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실패는 일반적으로 정보와 지식의 제약 때문에 어떤 정책을 실행에 옮기려 할 때 그것의 귀결을 완벽하게 예측하거나 민간 부문의 반응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발생한다. 전세대출 장려는 공공기관의 보증 아래 제도권 대출기관이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다시 돈을 빌려주는 복잡한 구조를 통해 이뤄졌다. 제한된 정보를 가진 정부가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모두 예상하고 대응하기는 애초 거의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전세대출 확대를 통해 전세 거래를 장려하는 정책보다는 전세 거래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힘쓰는 한편 서민 주거 지원은 전세보다는 월세와 자가에 초점을 맞춰 월세 바우처 지급 및 주택 구입 보금자리론 확대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