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IRA, 테슬라법 되나

정인설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태생부터 기형적이다. 법안을 처음 고안한 민주당 주류엔 ‘설거지용’ 법안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추진한 인프라 법안의 완결편이 필요했다. 도로를 놓고 다리를 건설하는 물적 인프라 예산(인프라 투자법안)은 의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기후변화와 복지 중심의 인적 인프라 예산이었다. 공화당 반대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고안한 게 IRA다. 각종 친환경 사업에 보조금을 주는 게 핵심이다. 기후변화 시대에 대비해 그린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명분을 갖다 붙였다. 2024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려는 선심성 정책 성격도 있었다.

희한한 IRA 탄생 전말

최종 관문은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이었다. 당시 상원의 캐스팅 보트를 쥔 맨친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법안을 수정할 전권을 위임받았다. 그는 엉뚱하게 IRA를 무력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보조금 받는 것을 최대한 어렵게 만들었다. 본인의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석탄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어서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배터리 요건은 아주 까다롭게 설계했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해야 한다는 규정도 들어갔다.

동맹국들은 반발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EU)이 들고 일어났다. 동맹국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나온 배터리 광물을 써야 한다거나 북미산에만 보조금을 주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동시에 대안도 모색했다. 한국이 먼저 움직였다. 급조된 법의 허점을 노렸다. 맨친 의원 등은 일반 전기차 관련 조항만 들여다봤다. 상업용 전기차 규정은 손도 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규정은 일반 전기차에만 적용됐다. 상업용 전기차는 그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한국은 상업용 전기차를 규제 사각지대로 보고 상업용 범위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 판매 차량의 30%를 차지하는 리스 차량과 렌터카를 상업용 전기차 범위에 넣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가 리스로 전기차를 사면 한국에 독소조항인 ‘북미산 규정’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일본도 반사이익 보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업용 차량은 북미산 조항뿐 아니라 모든 요건에서 예외를 인정받았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배터리 광물을 조달할 필요도 없고 북미산 배터리 부품을 쓸 필요도 없다. 전기차 가격이 5만5000달러(승용차)나 8만달러(SUV)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에서도 예외다. 구입자의 연소득이 15만달러보다 적어야 한다는 장애물도 없다.

이런 조건은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완성차 업체에 적용된다. 가령 10만달러 상당의 테슬라 전기차도 리스로만 구입하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결국 상업용 전기차는 아무 규칙 없이 싸우는 격투기장이 됐다. 한국 정부가 어렵게 상업용 전기차 조항 개정에 힘써서 남 좋은 일을 시킬 수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재미는 남이 보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