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만 쓰자 하고 진짜 민생법안은 외면하는 여야

여야 정치권에서 나라 곳간을 풀자는 요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거대 야당은 진작부터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고 있고, 여당 일각에서도 추경과 함께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의 61%에 해당하는 중산층까지 난방비를 지원하자고 한다. 여야 의원들은 무임승차 대상 노인 증가에 따른 연 9000억원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의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벌써 내년 총선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정치권 압박이 거세지면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물가 폭탄을 맞은 상황에서 돈 풀기는 수요를 자극해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하고, 금리 인하 시기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민생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이런 가운데 여야는 처리가 시급한 진짜 민생법안엔 손을 놓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위기에 처했지만,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높이는 내용의 관련 법안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법안이 제출된 지 한 달이 지나 오는 14일에야 상정한다지만, 야당 반대로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8시간 추가 연장근로제 일몰 연장법은 여야 이견으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말 시효가 끝났다. 야당은 이 법안 논의를 1월 임시국회 소집 명분 중 하나로 꼽아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정부는 1년 계도 기간을 줬지만 업계는 근로자 고소·고발이 있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한 대책 법안을 지난해 8월 내놨지만 국회에서 반년이 다 되도록 먼지만 덮어쓰고 있다. 2년 전 임대인 세금 체납 제시 의무화, 전세사기 가담 중개사 자격 취소 요건 확대 등 전세사기 방지 6개 법안도 발의했다. 그러나 여야는 뒷전으로 미뤄뒀다가 빌라왕 사태가 터지자 비슷한 법안을 우후죽순 꺼내면서 뒷북을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