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올리자" 배짱 부리다…미분양 폭탄에 '눈물의 할인' [김진수 부동산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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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3000가구 대단지의 '10% 할인 분양'의 의미최근 부동산업계는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대단지의 할인 분양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3000가구에 가까운 대단지가 청약 부진 속에 '분양가 10% 할인'이라는 파격 카드를 꺼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미분양의 공포가 수도권으로 확산하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덕현지구 재개발 조합은 지난 4일 긴급 총회를 열고 분양가를 10% 내리기로 했습니다. 3.3㎡ 평균 분양가는 3211만원에서 2889만원으로 낮아지게 됐습니다. 분양가 할인으로 최고가 기준 전용 59㎡는 7억2000만원대, 전용 84㎡는 9억6000만원대로 예상됩니다.단지 규모는 지상 38층 23개 동에 2886가구에 달합니다. 평촌학원가를 이용할 수 있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 동탄인덕원선 개통 호재도 있습니다. 다만 4호선 범계역까지 좀 먼 게 흠입니다.
일단 주변 아파트 단지의 같은 면적대 시세가 분양가보다 낮다 보니 청약 경쟁률이 떨어졌습니다. 일반분양 1150가구 모집에 350건만 접수됐습니다. 고분양가 논란에 조합이 분양가 인하로 대응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단지는 2020년 선분양을 하려고 했지만, 적정 분양가에 대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이견으로 후분양으로 전환했습니다. 당시 조합이 원한 분양가가 2400만원대였고 HUG는 1800만원대를 제시했습니다. 조합이 분양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지만, 청약 흥행에 실패했습니다.위 단지는 후분양이라는 특성상 미분양 해소책으로 직접 할인 등 선택지가 적t습니다. 일반적으로 분양하는 단지는 준공 때까지 사업 기간이 다소 깁니다. 중도금 무의자,발코니 무상확장 등 미분양 유인책이 상대적으로 많은 게 차이점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파트 분양가를 결정하는데 조합의 파워가 세졌습니다. 이전에는 시공사인 건설사가 시장 상황과 시세, 금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분양가를 제시하면 조합이 순응하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조합이 주도적으로 분양가 인상에 나섰습니다. 일반 분양가격이 높을수록 조합원 이익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급락하고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수도권에도 분양가 책정 이슈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의 수도권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도 더 이상 '분양 안전지대'가 아닌 셈입니다. 정부가 최근 민간주택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하고 모두 해제하면서 분양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조합은 초기 미분양을 감수하더라도 일단 분양가를 높게 잡고 분양에 나서자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건설사는 이 과정에서 애를 태웁니다. 초기 미분양 단지라고 낙인찍히면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분양가를 높게 잡자는 조합과 달리 건설사는 수요자들의 높은 청약 관심을 끌면서 분양 대박을 이끌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미분양 가구가 6만8107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1만1035가구입니다. 상대적으로 적어 보입니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상반기 부동산 시장 침체를 우려해 분양 시기를 조정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난달 분양한 아파트는 전국 4개 단지, 1569가구로 집계됐습니다. 당초 조사 당시 예정 물량인 7275가구(10개 단지)의 21.6%에 그친 겁니다. 상반기에 미분양 가구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앞으로 건설사와 조합의 분양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분양가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할인 분양 단지가 많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청약은 냉정한 시장의 평가입니다. 시장 침체기에 가격에 대한 저항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조합과 건설사가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