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이수만 왕국' SM을 흔든 금융맨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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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재테크에 뛰어든 서준이와 하윤이는 나란히 OO전자 주식을 샀다. 서준이는 “OO전자 경영진을 믿는다”며 주가가 오를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하윤이는 “회사가 잘되려면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OO전자는 배당을 더 늘리고 적자 사업을 정리해야 주가가 오른다는 게 하윤이의 생각이다. 하윤이는 OO전자 대표에게 자신의 제안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답이 오지 않으면 다른 주주들을 모아 임시주주총회 소집도 요구할 태세다.
회사 지분 확보해 경영 적극 개입
하윤이처럼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투자 전략을 ‘행동주의(activist) 투자’라 한다. 투자자들에게서 자금을 모아 행동주의 투자에 집중하는 펀드는 ‘행동주의 펀드’라 부른다. 비주력 사업 구조조정, 인수합병(M&A),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이 이들의 주된 요구사항이다. 경영에 직접 관여하기 위해 이사회 참여를 시도하기도 한다.과거 행동주의 투자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주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9년 이후 S&P500 대기업의 15%가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경영진 교체, 사업전략 변경 등을 요구받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행동주의 펀드 이미지는 ‘기업 사냥꾼’에 가까웠다. 국내 간판 기업들이 엘리엇, 소버린, 아이칸 등의 공격에 시달린 기억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 한쪽에선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해 기업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한다. 행동주의 펀드는 잠시 주가를 올린 뒤 팔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기업은 이들의 공세에 대응하다가 진이 빠진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선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한다는 찬사를 받는다. 금융 전문가들이 합리적 논리를 앞세워 소액주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기도 해서다.최근에는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SM엔터테인먼트에 일격을 가하면서 연예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경영 발목잡는 존재” vs “기업가치 상승 기여”
얼라인은 지난해 SM 지분 1%를 확보한 뒤 ‘주주 권익’을 명분으로 여러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SM이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에 매년 매출의 최대 6%를 지급해온 계약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동조하는 주주가 늘자 SM은 실제로 이 계약을 조기 종료했다. 얼라인은 경쟁력이 떨어진 ‘이수만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SM은 지난 3일 이 총괄이 독점해온 프로듀싱 권한을 내·외부로 분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카카오를 2대 주주로 맞기로 했다. 최대주주 이 총괄의 동의 없이 내려진 결정들이다.행동주의 펀드와 마찰을 빚던 SM엔터 경영진이 이제는 이 총괄 퇴진에 힘을 합친 모양새가 됐다. 충격을 받은 이 총괄은 “위법 행위”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도발은 K팝 산업에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