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번역기 이용해 번역상…수상자 "한국어 배워, 사전처럼 활용"

한국문학번역원 "신인상 제도 보완·AI 협업 범위 논의 필요"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일본인이 인공지능(AI) 번역기 도움을 받아 일본어로 옮긴 웹툰이 국내 대표 번역상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2022 한국문학번역상' 웹툰 부문 신인상을 받은 일본인 마쓰스에 유키코 씨는 국내 인기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네이버의 AI 기반 번역기 '파파고'를 이용했다.

웹툰 부문 신인상은 번역원이 공모를 통해 과제 작품을 제시하고 지원자가 그중 선택해 해당 언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마쓰스에 씨는 이 사실이 알려진 8일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10년 전에 이미 1년간 한국어를 배웠고 응모 당시에도 한국어 수업을 수강 중이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번역상 응모 계기도 한국어 선생님이 웹툰 정도는 충분히 번역이 가능할 것 같다고 권유했기 때문"이라며 "다만 회화 실력은 서툰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마쓰스에씨는 또 웹툰을 일본어로 번역한 과정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통독한 뒤,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해 파파고를 사전 대용으로 사용했다"며 "작품이 무속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생소한 용어와 개념이 많아 논문자료 등을 후속 조사하며 용어와 맥락을 파악했다.

이후 작품 흐름에 맞춰 세부 수정을 더해 번역을 완료했다. AI 초벌 번역이란 인식은 해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번 일이 번역에서 AI를 이용하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고 신인상 공모 제도 개선과 함께 AI와의 협업 범위에 대해 정책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번역 신인상의 경우 신진 번역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에 맞게 'AI 등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은 자력의 번역'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수상작은 관련한 확인 절차를 밟는 방향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번역원 관계자는 "작년 시상 기준으론 제도가 미비했기에 수상 철회 여부는 필요하면 논의하겠다"며 "AI 번역을 어디까지 수용할지가 이번 사례의 초점"이라고 말했다.

이미 AI가 창작하는 시대가 열린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AI의 발전적인 협업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오픈AI사의 '챗GPT'는 인격체와 대화하는 느낌을 줄 뿐 아니라 보고서나 논문 작성, 코딩, 작곡 등도 단시간에 해낼 수 있다.

최근 '번역가의 길'을 출간한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통화에서 "신문 기사, 법률 및 외교 문서, 상품 광고나 문안은 AI 번역이 거의 완벽하게 가능하다"며 "이런 기술 번역과 달리 문학 번역은 AI가 인간의 미묘한 감정, 함축적인 의미, 뉘앙스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순 없지만 번역가의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