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를 지배한 두 유대인 가문…신간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기 이전 중국의 상하이(上海)는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도시였다.

그러나 불과 50여 년만인 1895년 상하이는 영국 런던 수준의 시내 전차 체계와 가스 공급망을 갖췄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시카고에 버금가는 마천루와 스카이라인을 보유하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가 된다.

상하이가 '중국의 뉴욕'으로 변신하며 중국의 금융, 상업, 산업의 중심지가 된 데는 여러 분석이 있지만 2015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조너선 카우프만은 두 유대 가문인 '서순'(Sassoon)가와 '커두리'(Kadoorie)가에 주목한다.

신간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생각의힘)은 30년 가까이 중국 전문 기자로 활동한 카우프만이 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부터 1949년 공산당 집권 때까지 100여 년간 상하이에 큰 영향을 끼친 두 유대인 가문의 이야기를 풀어낸 논픽션이다. 두 가문은 모두 중동 바그다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장 과정은 달랐다.

'아시아의 로스차일드'로 불리며 바그다드에서 유대인 지배계층이었던 서순가의 데이비드 서순은 권력 다툼에 밀려 인도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가문의 배경을 등에 업고 사업에 성공한 데이비드는 아편 판매 사업을 위해 중국에 눈을 돌렸다. 반면 엘리 커두리에게는 서순가와 같은 배경이 없었다.

서순가의 먼 친척이긴 했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데이비드 서순이 인도에 세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홍콩의 서순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엘리는 고무회사 투자로 백만장자가 됐고 상하이의 회사 지분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책은 데이비드 서순과 엘리 커두리부터 시작해 두 가문의 후손들이 중국 근현대사의 격변기에 어떻게 사업을 키워나가며 오늘날 상하이, 나아가 중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가독성 있게 풀어낸다.

쑨원과 장제스, 마오쩌둥 등 당대의 정치가들과의 관계, 나치를 피해 상하이로 흘러들어온 1만8천여 명의 유럽 유대인 난민을 보호한 일, 시대를 앞서갔던 두 가문의 여성들 이야기들까지 복원해 낸다.
두 가문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 이후 서로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면서 엇갈린 운명을 맞는다.

두 가문 모두 상하이에서 몰락했지만 커두리 가문은 홍콩에서 살아남아 페닌슐라 호텔 체인과 홍콩 최대 전력회사인 CLP 홀딩스를 경영하는 등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두 가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양면적이다.

"한 세대의 중국인 비즈니스맨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그들이 자본가와 기업가로서 성공하는 것을 가능케 한 도시를 빚어내는 데 기여했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문화를 창출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두 가문이 얻은 막대한 재산은 저임금과 불공정 경쟁 위에 쌓아 올렸고 상하이를 착취했다"라고도 지적한다.

물론 두 가문의 성장에는 제국과 식민주의도 힘을 보탰다.

두 가문의 선택은 오늘날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적 자유·도리와 상업적 이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당시 두 가문의 딜레마이자 오늘날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직면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파일 옮김. 44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