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도록…'이동형 펫 장례' 달린다 [긱스]

일본에선 익숙한 '이동형 펫 장례'가 국내서도 본격 활성화될 조짐입니다. 비용과 접근성, 반려동물이 생을 보낸 공간 근처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장점에도 규제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던 사업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국내 최초로 관련 사업에 도전한 펫토피아의 이다슬 대표를 만났습니다. "지난 3년간 사업 운영을 못했다"는 이 대표는 "마지막 가는 길, 아이들이 쓰레기 봉투에 담기진 않도록 다시 달리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삶을 함께한 작은 동물이 곁을 떠난다. 가족을 보내는 무거운 마음은 쉽사리 추스르기 어렵다. 검은 정장을 입은 ‘펫 장례 지도사’가 도착하는 때는 항상 애달픈 현장이다. 보호자를 위로하고, 반려동물을 염습하는 과정에선 장례 지도사도 눈물을 삼킨다. 다리를 묶어 수의를 입히고, 반려동물 사진을 넣어 화장까지 치르는 1시간은 길고도 짧다. 사뭇 다른 풍경이 있다면, 장례가 자택 앞에서 치러진다는 것이다. ‘이동형 화장터’가 반려동물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제를 지내는 광경은 아직 국내선 쉽게 찾아볼 수 없다.스타트업 펫토피아의 이다슬 대표는 2017년 9월 아버지와 함께 국내 최초로 이동형 펫 장례사업을 시작했다. 통상 반려동물 장례식은 경기도 외곽지역에 위치한 동물 화장터에서 이뤄진다. 펫토피아는 이런 개념을 바꿔, 차량을 개조해 ‘찾아가는 장례식’을 구현한 곳이다. 스타렉스나 시티밴과 같은 승합차 내부에 화장 설비를 탑재하고 전국을 떠도는 것이 이 대표 일이다.

단체로 얼렸다가 버려지는 동물 사체들

이다슬 펫토피아 대표가 이동형 반려동물 화장 설비 앞에 앉았다. /펫토피아 제공
처음 입소문을 탔던 배경은 열악한 국내 반려동물 장례 시장 상황 때문이었다. 한 해 평균 사망하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의 수는 약 50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이 중 장례업체가 담당하는 건수는 30% 이하다. 나머지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쓰레기봉투에 담기고, 동물병원에서 의료 폐기물로 처리되기도 한다. 고가의 장례비용 탓에 불법인 매립이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기피 시설인 화장터가 부족한 것도 이유지만, 수도권의 경우 화장터가 대부분 경기도 외곽지역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이 대표는 “동물병원에서 사체를 냉동실에 잔뜩 얼려놨다가, 폐기물 소각장에 버리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쓰레기랑 같이 태워주는데, 동물 사체는 그렇게 처리되는 것이 합법이었다”며 “아이들이 쓰레기 봉투에 담기진 않을 정도로, 마지막 가는 길 잘 보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유년시절 믹스견 '아롱이' '다롱이'를 키우며 컸다.

그는 연극배우였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꿈을 정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2011년 3월 대학로에서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자택인 인천에서 1호선을 타고 매일 새벽 연습실 문을 열었다. 저녁엔 혜화역 인근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훈련을 시켜준다는 개념의 극단에선 돈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면 다시 새벽이었다. 사력을 다했지만, 배역을 맡기가 쉽지 않아 그만뒀다. 이후엔 의류를 팔았다.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그가 아동복 매장에서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2017년이었다. 일본을 다녀온 당시 63세의 아버지가 먼저 창업을 제안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탱크로리 회사를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IMF 이후엔 음식점을 하다가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했다. 사업의 꿈만큼은 계속 가졌다고 했다. ‘신들의 나라’ 일본은 반려동물 장례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동물 납골당이 번성한 데다, 이동형 장례차가 이미 존재했다. 창업 아이템을 잡은 부녀는 인천 부둣가에서 차량을 직접 개조하기 시작했다. “연안부두 끝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들의 공터에서 차를 뜯었다”며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 사이 이 대표는 “내장재가 뭐 들어갔는지, 기계 내부가 몇 센티미터인지는 눈 감고도 다 알 정도”로 차량 전문가가 됐다. 배울 곳도 없어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결국엔 국토교통부를 통해 정식 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다. 허가된 차량명은 ‘이동식 동물 사체 처리차’였다.

이동형 화장터 정의하지 못한 현행법

펫토피아 장례식 진행 장면. /펫토피아 제공
장례지도사 일도 배워야 했다. 학원에 다니고, 영상으로 독학도 했다. 하지만 익숙해진 것은 실전에서였다. 입소문이 나며 창업 직 후 반년, 하루에 4건씩 장례를 처리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일반 가정집도 많았지만, 인천 소재 동물병원들에서도 연락이 잦았다. 이 대표는 “경기도 외곽 고정형 화장터는 고가의 동물 사체 운반비가 붙는다”며 “이동형은 운반비가 빠지며 가격경쟁력이 있다 보니 다양한 고객이 찾는다”고 했다.좋은 집과 병원부터 반지하 빌라촌까지 누볐다. 일감이 한창이던 여름엔 땀을 빼며 정장을 입고 “반려동물이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지 느꼈다”고 했다. 어느 날의 동인천 판자촌은 뇌리 깊숙이 자리했다. “젊은 여자분이 전화가 왔어요. 할머니가 키우던 길고양이가 죽었는데, 어쩔 줄 몰라서 지나가던 사람을 잡고 물어봤던 겁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노인에게, 가족 같은 고양이었다고 너무 고마워하셨어요.”

일감이 늘어나던 차,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고정형 화장터를 운영하던 업체들이 집단 반발을 시작한 것이다. 근거는 동물보호법이었다. 동물보호법 33조 1항에 따르면 동물 사체는 동물장묘업의 등록을 한 자가 설치·운영하는 동물장묘시설에서 화장할 수 있는데, 이 장묘시설에는 이동형 화장터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법은 고정형 화장터의 설치 규정만 정의하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사업 분야가 예전 법에 막힌 셈이다. 당시 관련 회의를 주관했던 농림축산식품부 측도 고정형 화장터 장례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2018년 말부터 3년간 펫토피아가 영업을 중단했던 이유다. 그사이 비슷한 업체들도 알음알음 생겨났다.

영업 재개의 길이 열린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이동형 펫 장례업도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름을 올릴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같은 종류의 규제 샌드박스도 준비하고 있다. 특징으론 기술력을 내세운다. 이 대표는 “펫토피아는 이동식 장례 차량에 대한 특허를 보유한 유일한 업체”라며 “과거 일본에서 5000만원짜리 화장로 2개를 가져와 아버지와 맨손으로 만들어 낸 성과”라고 했다. 그 사이 김포에 고정형 화장터 공간도 마련했다. 현행법상으로도 완전한 동물장묘업자가 된 것이다.

2020년 시드(초기) 투자로 엔젤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할 당시, 투자자들은 플랫폼화 가능성에 주목했다. 반려동물 시장에 충성도가 있는 고객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모을 업으로 관점을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생각도 같다. 그는 “2차 사업으로 상조 상품과 펫보험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동형 펫 장례 사업이 국내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전력투구하겠다”고 전했다.

참 한 가지 더

반려동물 장묘시설 여전히 '태부족'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서 민간 화장터가 성행하게 된 배경엔 공공 장묘시설 부족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앞서 강원도에선 일반 화장터에서 음성적으로 동물 화장을 치르고 이를 은폐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외에선 일반적인 공공 장묘시설이 국내에 처음 생긴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21년이다. 전라북도 임실군에 위치한 '오수 펫 추모공원'이다. 오수 펫 추모공원 역시 설립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장묘시설을 기피하는 지역이 많다 보니, 개 덕분에 주인이 목숨을 건진 '오수의 개' 설화가 탄생한 고장까지 시설이 흘러와 안착했다.제주도는 오는 2024년까지 90억원을 투입해 공설 장묘시설 등을 만들고 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이루어지는 시도다. 나머지는 모두 민간업자가 운영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동물장묘업체 수는 총 57개다. 이중 화장과 건조, 납골시설을 모두 갖추고 전반적 장례를 운영할 수 있는 업체는 경북과 전북 소재 2개에 불과하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