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I는 시작일 뿐…미국발 '경제 폭풍'이 밀려온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CPI·반도체·철강 관세까지…워싱턴이 정하는 한국의 운명 / 美증시 주간전망
또다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주간입니다. CPI의 소숫점 첫째 자리 변화에 따라 증시의 단기 방향이 결정됩니다. 1월 고용보고서로 인한 불안감에 기름을 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점입다. CPI의 유효기간은 짧게는 한 주입니다. 길어야 다음달 CPI가 나올 때까지입니다.
곧 나올 미국발 변수는 급이 다릅니다. 그 영향력은 짧게 봐도 2년입니다. 아니 반영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 견제와 '바이 아메리칸',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큰 틀 아래 견고한 세부 무역원칙들이 정해집니다. 좋든 싫든 한국은 미국과 중국으로 블록화된 세계 질서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번 주엔 워싱턴이 정하는 한국의 운명을 중심으로 주요 이슈와 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두더지 게임' 같은 CPI

발렌타인데이에 발표되는 1월 CPI는 투자자들에게 단맛을 줄까요. 쓴맛을 안길까요. 현재 예상으론 둘 다 들어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인플레이션의 핵심인 임금 상승률이 꺾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지표로 봐도 그렇습니다. 고용보고서에 나오는 평균 임금 상승률이나 고용비용지수(ECI)도 둔화 추세입니다.
미 중앙은행(Fed)에 백악관까지 가세해 홍보하고 있는 개인소비지출(PCE) 기반의 임금 상승률도 그렇습니다. 주택을 제외한 '슈퍼 코어' PCE에서 임금상승률을 산출했더니 둔화 추세가 뚜렷했습니다. 지난해 초 7~8%였지만 같은해 12월엔 4.5~5%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파월 의장의 말대로 주택 서비스 즉 렌트비도 둔화 추세입니다. 민간 통계에선 이미 그 흐름이 잡히고 있고 CPI 통계에도 하반기엔 반영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한동안 잠잠하던 기름값이 뛰고 있습니다. 중국의 리오프닝 때문에 앞으로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튀르키예의 지진도 유가와 곡물가에 긍정적인 소식은 아닙니다.
지난해 미국 인플레 품목 중 선행지표 역할을 해온 중고차 가격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인 만하임에 따르면 올 1월 중고차 평균가격은 한 달 전보다 2.5% 올랐습니다. 중고차 수요가 급증한 영향입니다. 그동안 속썩이던 골칫덩어리인 임금과 서비스 가격이 진정되니 잠잠하던 사고뭉치인 유가와 중고차 가격이 꿈틀대는 형국입니다.

물가 선행지표는 '선행'을 할까

1월 CPI의 시장 컨센서스는 전년 동월대비 6.2~6.3%입니다. 12월 상승률(6.5%)보다 낮지만 하락 예상폭이 크지 않습니다. 디스인플레션 정국에서 적중률이 떨어지고 있는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의 인플레나우 캐스팅은 1월 CPI를 6.44%로 12월과 비슷하게 예측합니다.

12월 CPI는 전달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소수 첫째자리 반올림 기준으로 2020년 5월 이후 31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1월 CPI는 전달대비 0.5%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어 인플레 불안 심리가 커질 수 있습니다.

CPI 선행지표도 나옵니다. 1월 CPI 발표 전날인 13일에 뉴욕 연은의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나옵니다. 계속 하락 추세인 1년 기대인플레가 얼마나 더 꺾일 지가 관심사입니다.

16일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발표됩니다. 지난해 6월까지 11%대였던 PPI는 12월엔 6.2%로까지 떨어졌는데 이 추세가 이어질 지가 관전포인트입니다.

'고용 쇼크'를 소비가 조금 완화시켜줄 지에 관심이 모아집니다. 경기후퇴를 반영하는 순서를 보여주는 'H·O·P·E' 이론에 따라 주택과 주문, 기업 이익은 다 꺾였습니다. 가장 후순위인 고용만 견고합니다. 고용과 상관관계가 높은 소비도 둔화하고 있습니다.

소비 대표지표인 소매판매가 15일에 발표됩니다. 전월대비 기준으로 두 달 연속 마이너스로 떨어졌는데 이번에 어떨 지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를 통해 파월 의장의 말대로 연착륙이 가능할 지 여부도 엿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경기둔화폭과 실업률 상승폭을 최소화하면서 인플레를 잡는 길입니다.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를 바꿔 희생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허리케인급 '미국발 변수' 줄줄이 대기

증시 영향력이 큰 CPI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월례행사에 불과합니다. 유효기간이 한 달이라는 겁니다.

앞으론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시험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선 반도체 시험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고사시키기 위해 반도체 수출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나와 있는 가드레일 조항을 통해 보조금 대상 기업은 중국 투자를 제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미 상무부는 미국 기업이 18㎚(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 내지 14㎚)보다 기술 수준이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려면 별도로 허가를 받도록 했습니다.

상무부는 또 해외직접생산규칙(FDPR)과 미검증기업을 내세워 대부분의 중국 반도체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놨습니다. 요컨대 반도체와 관련해 미국의 기술과 제품, 장비가 모두 중국으로 들어가는 원천차단하고 있습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의 동참도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함께 반도체 장비 3대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일단 한국은 1년 유예기간을 받았습니다. 올 10월까지 한시적으로 중국 공장에 장비 반입이나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장비 보수와 추가투자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될까요.

이달 23일에 그 윤곽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반도체지원법 시행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달말에 세부 요건을 확정지을 방침입니다.


IRA에 이어 또 뒷통수 치나

한국산 철강은 쿼터제에 묶여 미국 수출량을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2018년 세이프가드를 통해 25%의 고율 관세를 피하는 대신 2015~2017년 3년 간 평균 수출 물량의 70%까지만 미국에 수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수출량을 늘리기 위해 이 조항을 바꾸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일 위기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현재 유럽과 글로벌 철강산업 구도를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GSSA(Global Sustainable Steel Arrangements)라는 도구를 통해서입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맺는 양자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협정입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철강 과잉공급에 대응하면서 관세 기준을 탄소배출량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2021년 10월 미-EU간 논의를 개시했으며, 올해 10월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EU가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국가를 중심으로 회원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회원국 간 저율 관세를 적용하고 비회원국에 대해선 고율 관세를 매길 가능성이 큽니다.

EU도 탄소배출 가격을 부담하도록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희생을 최대한 줄이려면

한국은 GSSA나 CBAM에서 모두 소외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철강제품은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고 품질도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탄소 배출량이 높은 게 흠입니다. 탄소 집약도는 주요국 중 12위에 불과합니다. 중국보다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미국은 현재 중국 견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은 미국 중심주의로 귀결됩니다. 트럼프 행정부 때 폐기했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바이 아메리칸'으로 간판만 바꿔달았을 뿐입니다. 중국 첨단산업의 발전을 막고 그 이후엔 모든 기간산업과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공급망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철강 등의 생산지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인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