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형의 현장노트] 모차르트에 오롯이 빠져든 시간…'주피터'로 화려한 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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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고토니와 KCO가 함께한호른의 힘찬 ‘도~레~파~미~’(C장조 기준)를 시작으로 여러 악기가 돌아가며 이 유명한 ‘네 음 모티브’를 흥겹게 반복하더니 곧장 코다(종결부)로 진입합니다. 무대 위 약 40명의 연주자들은 하나 된 몸짓과 하나 된 마음으로 짧지만 강렬한 총주(투티)를 뿜어냅니다. 마침내 지휘자 랄프 고토니의 두 손이 허공에 멈췄고, 잠시 후 ‘브라보~’와 박수갈채가 무대를 향해 쏟아졌습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6 전곡 연주’
8일 롯데콘서트홀 피날레 무대
초기~원숙기 모차르트 음악세계
투명하고 정교한 앙상블로 보여줘
지난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의 ‘모차르트 교향곡 46 전곡 연주’ 시리즈 피날레 공연 현장입니다. 국내 최초로 모차르트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시리즈 공연에 관심을 둔 음악애호가라면 누구나 예상하고 기대했을 법합니다. 시리즈의 대미를 교향곡 41번 ‘주피터’, 이중 ‘기악 최고의 승리‘라는 4악장의 환희에 찬 C장조 푸가로 화려하게 장식할 것이라고 말이죠.이런 기대를 100% 충족시키는 피날레였습니다. 고토니와 김민 음악감독 겸 악장을 비롯한 KCO 연주자들은 그동안 10회의 시리즈를 함께하며 갈고닦은 호흡으로 정교하고 밀도 높은 앙상블을 빚어냈습니다. 커튼콜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고토니는 김민 등 연주자들과 인사하고, 관악주자들을 소개하고, 41번 ’주피터‘ 악보를 들어보이며 박수를 보내는 등 대장정을 끝낸 감회를 무대에서 표출했습니다. 이렇게 2019년 12월 28일 모차르트가 아홉 살에 작곡한 1번 연주로 시작한 시리즈는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연주로 4년 2개월여만에 마무리됐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한국 클래식 음악 연주사에 한 획을 긋는 공연으로 평가될 듯싶습니다. 시리즈에 붙은 ’46‘이란 숫자가 눈길을 끕니다. 모차르트가 과연 몇 편의 교향곡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학자 간 주장이 다릅니다. 김민 음악감독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총 60여 편을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46편이 전 악장 악보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 KCO는 이 46편을 ’전곡‘으로 정하고, 열 차례의 공연을 통해 모두 연주하는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각 회는 네다섯 편의 교향곡과 협주곡 한 편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저는 이 중 절반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매회 공연 프로그래밍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소 음반이나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없었던 초중기 교향곡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교향곡과 협주곡을 고루 배치했습니다. 시리즈 중 한 회만 들어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초기부터 원숙기까지 어떻게 발전해 갔는지 윤곽을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생소한 곡과 익숙한 곡을 섞어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끔 말이죠.마지막 10회 공연도 그랬습니다. 교향곡 10·20·30·41번과 그 중간에 조재혁 협연으로 피아노 협주곡 23번이 연주됐습니다. 이 중 10·20·30번은 처음 들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유명한 25번이나 ’하프너‘’린츠‘’프라하‘ 등 30번대 교향곡, 후기 3대 걸작 39, 40, 41번 정도를 뺀 교향곡들은 이번 시리즈 공연에서 처음 들어봤습니다. 생소한 곡들엔 새로운 모차르트를 만나는 호기심으로 귀를 쫑긋하게 하고, 익숙한 곡들엔 반가운 마음에 더 집중하게 하는 게 이번 공연 프로그램의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베토벤 전까지 교향곡이란 장르의 성장사를 엿보는 재미도 톡톡했습니다. 모차르트가 14세에 작곡한 10번은 관악 파트가 호른 두 대, 오보에 두 대뿐이고, 연주 길이가 8분 남짓합니다. 프로그램북에는 3악장으로 나와 있지만 1악장 알레그로와 2악장 안단테가 한 악장처럼 연결돼 2악장 곡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1악장 첫 주제 ‘도레미파솔~,솔파미레도~’가 소년 모차르트를 떠오르게 합니다. 꽉 짜인 2관 편성 이상의 4악장 교향곡에 익숙하다면 ’이거 교향곡 맞아?’라는 생각이 들 법합니다.
2년 뒤 16세에 작곡한 20번은 확 달라집니다. 호른과 오보에에 플루트 한 대와 트럼펫 두 대가 추가돼 관악 사운드가 풍성해졌습니다. 3악장 미뉴에트가 있는 4악장 교향곡의 구조와 짜임새를 갖췄습니다. 연주 시간도 17분 정도 됩니다. 활달하고 자신감 넘치지만 아직은 덜 성숙한 청년 모차르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곡이었습니다. 다시 2년 뒤인 18세에 작곡한 30번은 편성이나 분위기, 짜임새 등이 20번과 비슷합니다. 작곡 시기에서 오는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조금 더 짜임새 있고 여문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험적이고 반항적인 색채도 엿보였습니다.피아노 협주곡 23번과 교향곡 41번 ‘주피터’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모차르트의 최고 걸작들로 꼽히는 작품들입니다. 30대 모차르트의 원숙하면서도 천재적인 기량과 음악성을 듬뿍 감상할 수 있는 곡들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협주곡 23번을 모차르트 작품답게 맑고 투명한 음색과 한 음표도 놓치지 않는 또랑또랑한 터치로 들려줬습니다. 그 유명한 2악장 f# 단조 아다지오에서도 감정의 과장 없이 선율에 어린 슬픔의 정조를 담담하게 표현했습니다. 플루트와 이번 공연 중 관악 파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클라리넷도 피아노와 담백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이번 마지막 공연도 이전 시리즈 공연 못지않게 어린 모차르트부터 성숙한 모차르트까지 모차르트 음악에 오롯이 빠져들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만 1년으로 기획한 모차르트 여정을 코로나19란 장애물을 이겨내며 4년여만에 마친 ‘KCO의 다음은 무엇인가요?’ 랄프 고토니는 이번 프로그램북 인사말에서 이렇게 묻고는 개인적인 바람이 섞인 듯한 답까지 내놨습니다. ‘나는 슈베르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요?’
저도 공연장을 떠나며 KCO의 다음에 이런 시리즈가 아니라면 접할 기회가 없을 듯한 슈베르트의 초중기 교향곡들을 듣고 싶다는 바람을 품어봤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