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386·조폭 주연의 '리얼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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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쌍방울 배후 '정폭 카르텔'이재명 민주당 대표 주변 의혹에서 가장 분노하게 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기막힌 면면이다. 쫓아가기 벅찰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연쇄 사건에선 하나의 공통 코드가 목격된다. 바로 권력 주구로 전락한 운동권 잔당과 물욕 충만한 조폭의 낯 뜨거운 콜라보다.
운동권 잔당, 권력·물욕으로 폭주
백광엽 논설위원
지난 10여 년간 성남 일대를 오염시킨 부패 커넥션에선 386 운동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대장동 설계자부터 운동권이다. 민관 합동 개발의 양측 컨트롤타워인 김만배와 정진상은 각각 성균관대와 경성대 운동권 출신이다. 정씨는 고려연방제 채택을 외친 전투적 학생조직인 남총련(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대장동에서 1208억원의 최대 배당을 챙긴 ‘천화동인 1호’의 이한성 대표도 성균관대 운동권이다. 운동권 정치인 이름도 오르내린다. 김태년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김만배 돈 수수설에 휘말렸다. ‘강성 NL’인 용성총련(용인성남지구 총학생회연합) 초대 의장 출신이다.
쌍방울그룹 대북 사업에선 운동권의 종횡무진이 더욱 눈부시다. 쌍방울에서 4억여원의 뇌물·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화영 경기부지사가 불법을 주도했다. 김만배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같이하며 이 부지사와 친해졌다”고 했다. 거대 야당 내 운동권 대부 격인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쌍방울의 '북한 광물 채굴' 베팅에 관여한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이어서다.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간첩 전력의 황인오 씨가 협회 부회장으로 그를 보좌했다. 성남 FC 후원금 의혹에도 운동권 이름이 오르내린다. 네이버가 40억원을 건넬 때 도관이 된 시민단체(희망살림) 운영자가 덕성여대 총학생회장 출신 제윤경 전 의원이다.
운동권이 부패·불법 네트워크로 흑화한 지 오래라지만 조폭 결탁 정황은 믿기지 않을 만큼 노골적이다. 이 부지사는 사채업과 주가 조작으로 기업을 일군 줄 알면서도 전주나이트파 출신 김성태 쌍방울 회장을 대북사업 동지로 선택했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대기업이 될 수 있다”며 대북 송금을 종용했다는 게 김 회장 진술이다.386과 조폭의 공생은 대장동 비리에서도 숱하게 감지된다. 김만배는 김 회장과 “통화하는 사이”라고 했다. 둘을 연결해 준 ‘헬멧맨’ 최우향 씨도 조폭 출신으로 화천대유 이사를 지냈다.
수상쩍은 이 ‘정폭(政暴) 연대’의 한복판에 이 대표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편향적 참모들에 둘러싸여 “제도권 입성 후 혁명대업 완성”을 외치며 운동권 코스프레 중인 그의 행보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지난 대선 때는 쌍방울 최고위 임원 4명으로부터 최고 한도(인당 1000만원)까지 후원받았다. 김만배가 박영수 특검 인척에게 빌려준 100억원 중 일부가 ‘변호사비 대납’ 배후로 의심받는 김 회장 소유의 페이퍼컴퍼니로 들어가기도 했다.
익숙한 일당들은 라임·옵티머스사태 때부터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져 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대목이다. 라임사태 당시 김 회장 비서실장 출신 엄모씨가 금감원을 방문해 ‘이재명·박범계 특보’를 자처하며 선처를 요청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이 대표 처남은 옵티머스 사기를 촉발한 부실기업 성지건설의 임원을 지냈다.
영화 뺨치는 ‘리얼 아수라’의 배후는 뭘까. 하나 분명한 것은 5년 내내 정권과 코드를 맞춘 검찰과 경찰의 지독한 무책임이다. 더 부끄럽고 두려운 건 따로 있다. 아수라 극 주연을 자처한 운동권 중심의 공고한 이익 네트워크 확산이다. 순정과 청춘을 대의에 바친 많은 386과 동시대인의 여망을 한 줌 잔당들이 짓밟는 무도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