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10만원 벌었어요"…인기 아르바이트의 정체 [이슈+]

사진=뉴스1
"취업 준비 중이다 보니 장기 알바(아르바이트)는 면접이 잡히면 일정을 바꾸기 어려워 꺼려져요. 대신 줄을 서주는 '오픈런(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하다가 뛰어가는 것) 알바'는 일정에 맞춰 줄을 서면서 회사 자소서(자기소개서) 준비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 선호해요"

취업준비생 이모 씨(27)는 최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새벽 4시부터 6시간 동안 줄을 서 10만원을 벌었다며 이같이 말했다.이씨와 같은 이유로 최근 경기 불황 속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 사이에서는 '오픈런 알바'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물건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본인 할 일을 하는 동시에 돈도 최저임금(시간당 9620원)보다 높게 벌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다.
중고나라 사이트에 올라온 오픈런 알바 구인 공고들. /사진=중고나라 사이트 갈무리
중고 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에는 이달(10일 기준) 들어 27건의 오픈런 알바 구직 공고가 올라왔다.

구직자들은 각각 "(아르바이트를 하는) 2년 동안 펑크 낸 적 없고 다양한 줄 서기 전문이다", "한파로 실내도 추운데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저를 시켜라", "줄서기 경험 많고 책임감 있는 저에게 맡겨달라" 등 어필을 하며 구직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오픈런 알바 구인·구직자들에 따르면 대게 시급은 1만원~1만2000원 선으로 형성돼 있다. 과거에는 근무지가 대개 명품관, 한정판 제품 판매 장소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영역이 넓어진 추세다. 예컨대 동네 소아과 숫자가 줄어 '소아과 진료 대란'이 벌어지자 돈을 주고 줄서기를 대신 부탁하는 부모들도 등장했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소아과로 대신 줄을 서고 왔다는 대학생 박모 씨(23)는 "지금 시기가 개강하기 전 방학이라 공부랑 병행하면서 가끔 나가 돈 벌고 오기 딱 좋다"며 "기다리는 동안 토익 공부를 하곤 한다. 좋은 일을 대신 해주는 것에 대해 뿌듯함도 느낀다"고 말했다.

오픈런 알바에 대한 인지도가 확산하고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관련 일자리 구하기가 최근에는 거의 '피케팅(피 튀길 정도로 치열한 표 구매)'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례로 최근 9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여있는 카카오톡의 '오픈런 줄서기 구인·구직 의뢰인 알바 오픈채팅방'에서는 올라온 구인 공고들이 빠르면 몇 초, 최대 2분 만에 마감됐다.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해외 오픈런 구인공고. /사진=카카오톡 화면 갈무리
980명가량이 모여있는 한 카카오톡 구인·구직 방에는 지난 10일 국내가 아닌 이탈리아, 파리, 독일로의 오픈런 알바를 가줄 사람을 구하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이 글을 올린 A씨는 매주 20세 이상 1명을 모집한다며 "근무 시작은 매장 오픈 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매장 오픈전 첫 매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이동 시간은 근무 시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어 "급여는 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100만원을 지급한다"며 "왕복항공권을 지급하는데, 근무 일정 전후 개인 일정에 맞춰 입출국 날짜 조율할 수 있고, 구매 후 사비로 여행 후 귀국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이 글이 올라오고 1분도 안 돼서 채팅방의 구직자들은 "이 알바를 다녀왔는데 유럽 구경 잘하고 왔다", "영어를 못해도 상관이 없다", "관심 간다" 등의 반응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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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오픈런 알바의 뜨거운 인기에 대해 원하는 시간대에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력을 들여 할 수 있는 일이란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일하는 편의점, 음식점 등은 현재 서빙 로봇이 생겨나는 등 인력을 대체하는 추세"라며 "원하는 시간대에 높은 시급을 받고 싶은 경우, 물류 배송 등을 돕는 단기 아르바이트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비교적 본인의 시간을 가지며 일할 수 있는 오픈런 알바에 수요가 몰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오픈런 알바를 구하는 이들은 단순히 시급보다 높은 돈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알바를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오픈런으로 물건을 얻어내기까지의 치열한 경쟁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며 "희귀한 것을 원하는 이에게 대신 전달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도 있다"고 풀이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