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 치료 새 길…세계 첫 알약 출시 눈앞

헬스케어 인사이드

산모 절반이 겪는 산후우울
'60시간 주사'가 유일한 치료법

바이오젠이 개발한 '주라놀론'
美 FDA, 8월께 승인할 듯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기를 낳은 기쁨도 잠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거나 불안증세가 생기는 등 우울감에 괴로워하는 산모가 많습니다. ‘산후우울’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령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산모 두 명 중 한 명은 산후우울감을 경험했습니다. 산후우울감보다 정도가 심한 것이 산후우울증(PPD)입니다. 식욕상실, 죄책감, 환각, 망상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산후우울은 호르몬 변화, 양육에 대한 부담, 신체 변화 등의 이유로 발생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생아의 건강 상태를 포함한 모든 요인이 산후우울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첫째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게 높은 비율로 나타납니다.발병률도 높고,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질환이지만 사회적 인식은 아직까지 부족합니다. 꼭 출산 후가 아니라 임신 중에도 나타날 수 있는 흔한 의학적 합병증인데도 정확한 유병률마저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유 등의 이유로 약물치료를 꺼리다가 치료 시기를 놓칠 때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산후우울을 앓고 있는 여성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가운 소식은 산후우울증을 치료하는 세계 최초의 알약 출시가 머지않았다는 겁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우선 심사대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르면 오는 8월 초 FDA 허가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FDA 승인을 받은 산후우울증 치료제는 정맥주사인 ‘줄레소’가 유일했습니다. 하지만 허가된 병원에 방문해 60시간 동안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바이오젠과 세이지테라퓨틱스가 함께 개발한 ‘주라놀론’은 2주간 하루에 한 번 복용하면 되는 경구용 알약입니다. 신경 스테로이드를 이용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감마 아미노뷰티르산을 조절하는 원리인데, 각성·행동·인지 등을 관장하는 뇌의 균형을 신속하게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옵션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상 3상에서 주라놀론 투여군은 위약 투여군에 비해 우울증 평가척도 점수가 크게 낮아졌으며 한 달 반 뒤에도 우울증 점수가 계속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로라 골트 세이지테라퓨틱스 최고의료책임자(CMO)는 “산후우울증 환자들로선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증상이 최대한 빨리 완화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습니다.산후우울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 질환을 산모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적·심리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산후우울증을 관리 및 상담할 수 있는 전문 센터는 전국에 10곳도 채 되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상담소 확충이 필요할 뿐 아니라 우울감 해소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배우자의 지지도 중요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