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파이어스테이트는 어떻게 건축비와 공기를 줄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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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2020년 여러분은 지긋지긋한 교통 체증에서 벗어나 화려한 은색 기차 안에 앉아 있을 겁니다.” 선거 유세가 치열했던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권자들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출발하는 기차 안에 앉아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라고 요청받았다.
큰일을 마무리하는 법 (How Big Things Get Done)
경제학자와 저널리스트 공저
대형 사업 '십중팔구' 예산 초과
철저한 계획·빠른 실행이 살 길
“기차는 교통 체증으로 꽉 막힌 도시를 유유히 빠져나가 가속하더니, 2시간30분쯤 지나 샌프란시스코 도심으로 진입합니다. 기차 안에서 아침 식사와 커피를 제공하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칩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에 탑승해 활주로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에 여러분은 총알 열차를 타고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그날의 장밋빛 예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려던 위대한 프로젝트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사업’은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에서 출간된 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큰일을 마무리하는 법(How Big Things Get Done)>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사업 이야기로 시작한다. 위대하고 환상적이라고 여겨진 프로젝트가 처참하게 실패하는 이유와 패턴을 소개한다.‘총알 열차’로 불리며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 시절부터 추진해온 캘리포니아 고속철도는 실패한 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첫 계획을 수립한 이후 14년이나 지난 지금도 사업 계획은 지연과 변경을 반복하고 있다. 비용은 430억달러에서 830억달러로 치솟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추가로 얼마나 더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덴마크 출신 경제학자인 벤트 플뤼비아 옥스퍼드대 교수와 저널리스트 댄 가드너가 함께 쓴 이 책은 대형 프로젝트의 사전 예측이 실패하는 원인과 의사결정의 오류를 분석한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건축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블록버스터 제작 과정, 브루클린의 잘못된 주택 개조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사례를 열거하면서 성공하는 프로젝트와 실패하는 프로젝트의 차이를 찾아낸다. 1만6000여 공공 및 민간 대규모 프로젝트를 조사한 결과 92% 이상이 예산이나 일정을 초과해 난항을 겪는다는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기술적, 심리적, 정치적, 경제적 요인을 파헤친다.책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언급하면서 ‘신중하고 철저한 계획’과 함께 반드시 ‘빠른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착공하기 전 이미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완성돼 있었다. 스케치에서 완공까지 단 21개월이 걸렸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축 비용은 5000만달러로 추산됐지만, 4100만달러로 마무리 지었다. 준공식 몇 주 전에 공사가 완료됐다. 비전이 계획으로 바뀌고 결국 새로운 현실이 되기까지 ‘천천히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시켜준다.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무분별한 공약을 남발한다. 그 가운데 과연 몇 퍼센트나 이뤄질까. <큰일을 마무리하는 법>은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