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21세기 금융패권' 은행이 아니라 결제망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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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금융회사는 어디일까. 정답은 시가총액 4821억달러(약 610조원)의 비자다. 결제회사인 비자는 은행업종인 JP모간체이스(4120억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2856억달러), 중국공상은행(2150억달러) 등을 가뿐히 앞선다. 비자의 경쟁사인 마스터카드(3541억달러)도 지구촌에서 몸값이 세 번째로 비싼 금융회사다.
고트프리트 라이브란트 외 지음
김현정 옮김 / 삼호미디어
456쪽|2만5000원
'결제 길목' 장악한 비자, 몸값 1위
시총 4800억弗…JP모간보다 커
수수료뿐 아니라 결제 데이터 확보
뭘 살지 파악해 맞춤형 광고 가능
'초대형 결제망 운영' 前 CEO 저술
연 100조弗 이상 결제해주는
SWIFT 근무 경험 쉽게 풀어내
사실 글로벌 핀테크 업체와 서비스 대부분이 결제와 관련돼 있다. 미국의 페이팔과 스퀘어, 중국의 알리페이와 텐센트페이, 동남아시아의 고페이, 한국의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등이 그런 예다.대체 결제가 뭐길래 이렇게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일까. <결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는 “진정한 금융 권력은 결제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제의 길목을 장악한 기업은 막대한 수수료뿐 아니라 ‘새로운 석유’라고까지 불리는 결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누군가를 결제망에 받아들이거나 배제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책을 쓴 고트프리트 라이브란트는 2012~2019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SWIFT는 민간 은행들이 결성한 조직이지만, 연간 140조달러에 이르는 국제 결제의 90%를 담당하는 결제망을 운영한다. 그가 들려주는 결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하는 배경이다.1950년 탄생한 최초의 신용카드인 다이너스클럽은 이랬다. 가맹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카드를 웨이터에게 건네면, 웨이터는 3중으로 된 먹지를 들고 돌아왔다. 서명한 종이는 각각 카드 소지자, 카드 발행사, 레스토랑이 나눠 가졌다. 카드회사는 모아 둔 명세서를 토대로 회원마다 매월 카드값 청구서를 보냈다. 카드값이 100만원이라면 식당은 93만원을 가졌고, 나머지는 다이너스클럽이 수수료로 가져갔다.
카드는 급속도로 보급됐지만 문제도 많았다. 결제 금액이 클 때는 식당 같은 가맹점이 은행에 전화를 걸어 승인을 요청한다. 혹시나 잘못 되면 음식값을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5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카드 사기도 발생했다. 1980년 비자가 모든 카드 뒷면에 마그네틱선을 집어넣어 ‘결제의 디지털화’를 이루면서 비로소 상당 부분 해결됐다. 실시간으로 은행 계좌에서 거래 대금이 빠져나갈 수도 있게 됐다. 직불카드가 신용카드보다 늦게 탄생한 까닭이다. 처음 직불카드를 만든 건 은행이었다. 카드사에 대한 은행들의 반격이었다.이렇게 보면 은행들이 결제 시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원래 JP모간체이스,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2만여 개 은행의 소유였다. 그러다 1996년 월마트와 시어스, 세이프웨이 등이 미국 소매업체를 대표해 비자와 마스터카드에 소송을 걸었다. 두 회사가 독과점 지위를 남용했다며 1000억달러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은행들은 법적 책임을 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두 회사를 팔아버렸다. 세계적으로 결제 금액은 계속 커지고 있기에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엄청난 돈을 쓸어 담는다. 지난해 비자를 통한 거래금액은 14조달러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배에 달한다. 순매출이 293억달러인데 그 절반가량을 순이익으로 남겼다.
‘어디에 돈을 쓰는가’만큼 값진 정보도 없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를 통해 대출을 할 수도 맞춤형 광고를 붙일 수도 있다. 결제 정보가 돈이 된다는 얘기다. 온갖 플레이어가 결제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간이 결제 정보를 독식하도록 내버려 두기를 꺼린다. 중국 정부가 알리페이를 규제하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화’ 보급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내용이 쉽고 결제의 역사와 현황을 잘 개괄했다. 대신 어느 부분 하나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을 조금 안다는 사람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