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냄새 나던 경동시장에 스타벅스 문 열더니…놀라운 변화 [현장+]

스타벅스 경동 1960점 열자…경동시장에 MZ세대 몰려
"스타벅스 입점, 시장에 젊은이들 많아 찾아"

빠르게 변화하는 청량리역 일대…역세권 개발 한창
"대형 상업 시설 들어서면 시장 상권 밀릴 가능성도"
경동극장을 리모델리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 내부 모습. 극장식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 사진=이송렬 기자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 지난 10일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붐볐다. 경동시장 역시 한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으로 손님이 줄면서 입주한 점포 절반 이상이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거나 문을 닫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MZ세대들이 선호하는 '핫플레이스'가 생긴데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다시 활기를 찾는 모습이었다. 새 아파트 개발까지 가세하면서 레트로와 현대적인 상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지역이 되고 있다. 상인들은 월세 걱정 보다는 늘어나는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경동극장, '스타벅스 경동 1960점' 변신…MZ세대 '핫플'

청량리 상권은 크게 국내 한약재 거래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약재 전문시장인 서울 약령시장, 채소·산나물 등 특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경동시장, 과일을 주로 취급하는 청량리 청과물 시장 등을 말한다. 이 중 옛 문화를 유지하면서 요즘 유행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곳은 바로 경동시장이다.

경동시장 4번 출입구로 진입하면 시장 오른편 '경동쌀상회'와 '도매인삼 2층'이라고 적힌 시장 간판들이 나온다. 그리고는 익숙하지만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로고가 하나 붙어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이라는 바다의 인어 모습을 딴 초록색의 '스타벅스' 간판이다. 한약과 채소, 음식 냄새에 뒤섞여 있던 시장 골목에 커피 향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 입구 모습./ 사진=이송렬 기자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1960년대 문을 연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한 매장이다. 약 363평 규모로 약 200여개의 좌석이 마련됐다. 오래된 기존 극장의 형태는 유지한 채 스타벅스만의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됐다.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영화관을 고쳐 만든 곳이라 공간이 꽤 넓었지만 어린 시절 누구나 하나씩 갖고 싶었으면 했던 '아지트'와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카페는 손님들도 가득했다. 대부분이 MZ세대였지만 삼삼오오 모여있는 중장년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60대 중반 A씨는 "청량리동 일대에 오래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지 꽤 오래됐는데 경동시장에 스타벅스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시장 안에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꽤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LG전자 팝업스토어에는 다양한 연령층…"유동인구 늘어나 뿌듯"

스타벅스와 함께 있는 LG전자의 커뮤니티 스토어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도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 공간엔 1958년 금성사 설립 이후 최초로 선보인 흑백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전시해 공간을 찾은 고객들이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했다.MZ세대 관심을 끌기 위해 'ThinQ 방탈출 카페'와 '금성오락실' 등의 체험존도 운영하고 있다. 다 쓴 일회용 컵을 활용해 친환경 화분을 만들거나 폐가전에서 추출한 재생 플라스틱으로 팔찌 등 굿즈 제작도 할 수 있다.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에서 체험을 돕고 있는 한 직원은 "커뮤니티 스토어를 방문하는 연령층은 2030 MZ세대부터 50~60대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경동시장 내부 모습. 예전 시장의 모습과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사진=이송렬 기자
스타벅스를 나와 경동시장 골목을 쭉 걷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MZ세대가 눈에 띄었다. 스타벅스가 문을 연 지 3개월가량 됐는데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는 '경동시장스타벅스'라는 해시태그가 달리 게시물이 500개가 넘게 올라왔다.

경동시장에서 수산물 장사를 하는 B씨는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시장에 꽤 오가고 있어서 보는 것 만으로도 뿌듯하다"며 "스타벅스에 들렀다가 경동시장 내 다른 물건들도 한 번씩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다중역세권 '청량리역' 일대…초대형 개발사업 줄줄이 마무리

비단 스타벅스와 LG전자의 커뮤니티 스토어 때문만은 아니다. 청량리 상권은 더 활성화될 여지가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바로 '청량리 역세권 개발'이다. 청량리역 일대는 수년 전만 해도 집창촌과 청과물시장 등이 있었다. 교통은 편리했지만, 주변 환경이 낙후됐다는 평가가 많았던 곳이다.

현재는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5월 입주)과 '청량리역롯데캐슬SKY-L65'(7월 입주)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들 단지 옆으로 '힐스테이트청량리더퍼스트'(11월 입주), '청량리역해링턴플레이스'도 있다. ‘청량리역해링턴플레이스’는 입주를 시작했고 이어 나머지 주상복합도 올해 차례로 집들이를 한다.

청량리역 주변으로 재개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청량리6구역은 최근 GS건설을 정비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사업을 추진 중이고, 청량리7구역은 2020년 4월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현재 철거를 하고 있다. 청량리8구역은 시공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빠르게 바뀌고 있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일대. 올해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줄줄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 / 사진=이송렬 기자
이 지역의 가장 큰 장점은 다중역세권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경강선(KTX), 경의 중앙선, 경춘선, 분당선 등이 지나다니고 있다. 교통 호재는 또 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C노선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고 B노선도 계획돼 있다. 면목선과 동북선 경전철이 예정돼 있고 목동과 청량리를 오가는 강북횡단선이 추진될 계획이다.

청량리역 일대 한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청량리는 도심과 가깝지만 강남과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변 지역도 낙후돼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도 "몇 년 새 주거 환경과 교통이 개선되면서 그야말로 '동북권에서 새로 떠오르는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일대가 획기적으로 바뀌면 상권도 자연스레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청량리역 일대로 들어서 있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시네마와 함께 역세권 개발로 각종 대형 쇼핑몰 등이 들어서면 오히려 전통시장 상권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어서다.인근 또 다른 공인 중개 관계자는 "기존 상권이 약령시장, 경동시장, 청과물시장 등 전통시장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 역세권 개발이 이뤄진다면 대형 상업 시설이 중심이 될 것"이라면서 "전통시장엔 악영향을 주지 않겠나. 단순히 스타벅스가 입점했다고 해서 시장이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