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접촉 힘들어요"…고립된 쪽방에 온기 전하는 봉사자들

용산구 동자동 주민 찾아가 '말벗' 봉사…고립감 줄이고 정서적 지원
"사람하고 접촉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열 마디 이상 해본 (동네) 사람이 없어요.

"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한 여인숙에서 A씨가 '말벗 봉사'를 하러 찾아온 가톨릭사랑평화의집(이하 '평화의집') 봉사자에게 말했다.

한때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그는 "형제님을 제일 많이 생각했다. 걱정됐다"는 봉사자의 말에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40대 후반인 A씨는 "나 자신이 쓰레기 같고 희망이 없었다"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했다.

봉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나와서 활동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A씨는 처음에는 무료로 배달해주는 도시락도 안 받겠다고 할 정도로 경계심이 강했다.

낯을 익히면서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봉사자들은 이날 그의 표정이 전보다 밝아졌다고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A씨와의 대화는 약 10분간 이어졌다.

평화의집의 주된 나눔 활동은 원래 도시락 제공이었다.

매주 화·목·토요일에 봉사자들이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일대의 어려운 계층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100개 정도는 평화의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나머지 150개 정도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다른 이유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이들에게 배달한다.

한때는 한 번에 400개까지 배달을 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한 후 도시락을 받는 이들을 일일이 찾아가 실태를 확인한 뒤 외부 활동이 가능한 이들은 도시락을 받으러 오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봉사 인력 확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쪽방 주민의 고립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도 변화의 배경이다.

매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이들이 쪽방에 산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도 있다.

예를 들면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이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 가족에게 외면당하며 이별을 한 이들이 살고 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경험이 많은 한 관계자는 쪽방 거주자의 이런 경향에 대해 "너무 피해를 봐서인지 불안감을 과도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일종의 대인기피증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생 여정을 자세히 묻지 않는 것이 쪽방촌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것이 쪽방 거주자의 고립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평화의집 관계자는 "온종일 방안에 누워만 있는 분들도 있다"면서 "다 배달해주면 너무 수동적으로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걸어서 밖으로 나오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물론 건강이 좋지 않아 나오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배달한다.
도시락을 제공하는 단체가 꽤 생기면서 쪽방에 거주하는 이들의 먹거리 사정이 과거보다는 좋아졌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서적 지원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말벗 봉사는 이런 측면에 주목한 활동이다.

봉사자들이 몇 명씩 조를 이뤄 도시락을 배달받는 이들 중 일부를 찾아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화한다.

사회활동 의지를 상실하고 방에 틀어박힌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온기를 느끼게 하려는 시도다.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자가 동행한 날 봉사자들은 5명을 찾아가 대화했다.

그중에 한 명은 10년째 동자동 쪽방에 사는 고령의 독거 여성이었다.

그는 심장이 좋지 않아 약을 먹고 있다고 했는데 건강이 걱정되는 상태였다.

걸을 수는 있지만, 기력이 쇠해 방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고 그래서인지 늘 소화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치아 기능이 상실됐고 틀니는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잘 맞지 않는 상태였다.
그는 봉사자들이 자신을 찾아와 어디가 불편한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대해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찾아오겠다는 얘기에는 반색했다.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걷기를 시도해보라는 권하고 떠나는 봉사자들에게 B씨는 "만사형통하시고 소원성취하라"고 덕담을 건넸다.

봉사자들과 만난 B(74)씨는 척추협착증과 백내장 때문에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B씨에게 한 봉사자는 "드리는 것도 저희에게는 기쁜 일이니 맛있게 드시고 건강을 회복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연락 두절 상태에 있던 C씨를 찾아가 만났다.

그는 "걱정해서 일부러 와주셨군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한동안 고생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쪽방 거주자가 겪는 어려움을 봉사자들이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이들이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봉사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봉사에 참여한 한 수녀는 "물질로 도와주면 그것에 대한 의존이 생길 수 있다.

자생하도록 지원할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고 고민을 이야기했다.
구조적인 문제까지 풀지는 못하더라도 쪽방 거주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봉사자 이순정(69) 씨는 "저희가 찾아가면 (쪽방 거주자가)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보면 그만큼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 것 같다"면서 "누군가 손을 내민다면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될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의집은 이번 달부터 말벗 봉사를 월 2회로 늘리기로 했다. 또 말벗 봉사 대상자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