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트림에 세금 물린다고?…'특별한' 소고기 만드는 나라

호주 퀸즐랜드주 와이누이 비육장에서 제레미 슬로스 매니저가 소들이 먹는 탄소 배출 저감 사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나프코는 이 비육장에서 호주 최초의 탄소중립 소고기인 '파이브 파운더스'를 생산하고 있다. 강진규 기자
호주 3대 도시 중 하나인 브리즈번 시내에서 서쪽으로 3시간가량 차를 타고 나가면 호주 최대 축산 대기업 중 하나인 나프코(NAPCo, North Australian Pastoral Company)가 운영하는 '와이누이' 소 비육장(feedlot)이 나온다. 퀸즐랜드 주와 노던 준주의 넓은 들판에서 약 2년간 키운 이 회사의 소가 100일 간 곡물을 먹으며 지내는 곳이다.

이곳의 소들이 인근에 있는 다른 비육장의 소와 다른 점은 특별한 첨가제가 더해져있는 사료를 먹는다는 점이다. 메탄 유발 효소를 억제해 트림에서 나오는 메탄을 최대 80%까지 줄여주는 '보베어(Bovaer)' 팰릿이다. 제레미 슬로스 나프코 와이누이비육장 매니저는 "이곳에 있는 모든 소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사료를 먹고 있다"며 "1년에 약 6만마리분의 '저탄소 소고기'가 출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레미 슬로스 나프코 와이누이 비육장 매니저가 보베어 팰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진규 기자

호주 첫 저탄소 소고기

나프코는 약 20만마리의 소를 사육하는 축산 대기업이다. 호주 내 2~3위권으로 평가된다. 지난 1877년 윌리엄 콜린스, 윌리엄 포레스트 등 다섯명이 창업했다. 5인의 창업자에서 따온 프리미엄 브랜드인 '파이브파운더스'는 지난 2019년 호주에서 처음으로 탄소중립 인증을 받았다. 사육과 도축, 운송 등 이 소고기를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탄소 배출이 없었다는 것을 호주 정부가 최초로 인증한 것이다.
호주 퀸즐랜드 주 고든 다운스에 있는 나프코 목장에서 소떼를 치고 있는 모습. 사진=나프코 제공
탄소중립 소고기 생산의 핵심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사료 첨가제를 쓰는 것이다. 나프코가 사용하는 첨가제 ‘보베어’는 네덜란드 화학기업 DSM이 개발했다. 소의 위장에 있는 미생물이 효소와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호주축산공사에 따르면 나프코의 파이브 파운더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네 개의 소고기 브랜드가 탄소중립 인증을 받았다. 호주 내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한 사료 첨가제 개발이 활발하다. 홍조류를 활용해 메탄 저감 첨가제를 개발한 스타트업 루민8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청정에너지 펀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벤처스’로부터 지난달 1200만달러(약 156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메탄 배출을 줄이는 사료를 먹인 것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제임스 카슨 나프코 생산·판매 총괄매니저는 "디젤 등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600만ha 규모의 목장에 나무를 더 심어 탄소 흡수량을 늘리는 등 다른 분야의 노력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또 "부족한 부분은 호주 정부가 인증한 탄소 크레딧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상쇄했다"고 덧붙였다. 호주축산공사에 따르면 나프코의 '파이브파운더스'를 시작으로 현재 4개의 소고기 브랜드가 호주 정부의 탄소중립 인증을 받은 상태다.

'기후위기 주범' 몰린 축산업

축산업자들이 탄소중립 소고기 생산에 나선 것은 축산업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먹는 것을 게워내 다시 씹는 돼새김질을 하는 소 등 반추동물의 트림과 방귀에는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이 다량 함유돼있다. 메탄은 대기 중 열기를 가두는 능력이 이산화탄소의 84배에 달해 기후변화의 주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소 한 마리가 매년 생성하는 메탄의 양은 거의 100kg에 달한다. 휘발유 약 3400L를 연소시켰을 때 나오는 메탄과 동일한 수준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62억3000만톤으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2%에 달한다. 축산물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배출량을 빼도 36억2000톤에 이른다. 2021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육류 및 유제품 회사 15곳이 배출하는 메탄의 양을 합하면 러시아의 메탄 배출량을 넘어선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정찰기로 방목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나프코 제공
축산 강국인 호주와 뉴질랜드는 이에 대응해 다양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소와 양의 트림 등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법안이 통과돼 2025년 시행할 예정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거둬들인 세금을 축산업 기후변화 대응에 재투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목장주의 반발이 거세다.

호주는 약 5년 전 비슷한 법안이 국민 반대로 폐기된 후 목장주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법으로 전환했다. 줄리아 와이트 호주축산공사 2030탄소중립프로젝트 매니저는 "소의 사육기간을 줄여 생산 효율성을 높이면 소가 메탄을 배출하는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동시에 목장주들이 더 빠르게 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목장에 나무를 많이 심으라고 권고할 때도 이를 나중에 목재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선택이 관건

호주 시드니의 대형마트 콜스에서 판매중인 탄소중립 소고기. 강진규 기자
문제는 탄소중립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호주 식품회사 하베스트로드가 지난해 '어떤 표현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느끼는지'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로컬푸드', '방목' 등이 '탄소중립', '탄소배출 저감' 등의 표현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 소고기를 마트 자체상품(PB)으로 출시한 호주 대형마트 콜스(coles)도 가격을 더 비싸게 받기보다는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퀸즐랜드주 소도시 투움바 인근의 작은 마을인 하이필즈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찬 니콜스 대표는 "무엇을 먹고 자란 소고기인지, 어디에서 생산됐는지를 묻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하베스트로드 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약 20%는 탄소중립 소고기에 30% 더 돈을 낼 수 있다고 응답했다.
크리스찬 니콜스 하이필즈 정육점 대표가 탄소중립 소고기를 설명하고 있다. 강진규 기자
현재 한국에서는 호주의 탄소중립 소고기를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마땅한 탄소중립 표시제가 없기 때문이다. 카슨 총괄매니저는 "인증 표시를 하지 못하면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며 "인증 표시를 허용하고 있는 일본, 싱가포르 등을 중심으로 파이브파운더스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와 관련해 탄소 배출을 평균 대비 10% 줄인 축산물에 ‘저탄소’ 인증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리즈번=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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