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업에 직원 이름·연락처 달라는 고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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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희 경제부 기자“고용노동부가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어기는 것 아닌가요.” (A기업 인사 담당 임원)
고용부가 최근 기획근로감독 과정에서 대상 기업에 근로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리스트를 통째로 내놓으라고 해 논란이다.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직원들로부터 동의받지 않은 개인정보 수집에 나섰기 때문이다.고용부는 근로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개인정보 수집 명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익명의 설문조사를 통해 근로자들이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리는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의 이런 요청은 자가당착이란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고용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함께 내놓은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름과 전화번호는 본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정보이므로 수집에 근로자의 동의나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를 근로자의 개별 동의 없이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이드라인 위반이라는 게 개인정보보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등에는 고용부가 근로감독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요구할 근거가 없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자체적으로 근로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하겠다고 했지만, 고용부는 “회사가 우호적인 근로자를 선별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근로감독을 받고 있는 회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근로자 이름과 전화번호 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된 기업의 한 관계자는 “감독관청의 말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고용부가 설문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 없이 모바일 설문조사의 인터넷 링크를 뿌리는 형식으로 하기 때문에 회사 직원이 아닌 사람도 참여할 수 있어서다. 직원이 아닌 사람이 여론을 조작하거나 거짓 제보를 할 우려가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충남연구원, 국민권익위원회, 경기도,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과 함께 개인정보 노출 사고가 많은 공공기관으로 꼽히기도 했다. 고용부 공무원들이 부 홈페이지에 있는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다시 한번 숙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