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은 시각장애 아티스트가 마음으로 그린 '복사꽃'입니다
입력
수정
지면A26
SKT타워서 28일까지 전시회색 빌딩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서울 을지로에 모처럼 화사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SKT타워의 겉면이 분홍빛 복숭아꽃으로 물들면서다. 타워 외벽에 설치된 53m짜리 미디어 월은 이달부터 만개한 꽃들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하게 피어난 복숭아꽃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게 된 것은 SK텔레콤이 장애 예술가 소속사 ‘에이블라인드’와 함께 준비한 전시회 덕분이다.
전시회 무대는 SKT타워 건물 외벽과 1층 로비에 설치된 미디어 월. SK텔레콤은 미디어 월을 통해 매월 새로운 미디어아트 전시를 선보인다. 이달에는 에이블라인드 소속 작가인 박환(사진) 허은빈 한희주 강금영 박정인 등 5명의 작품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해 소개한다.전시를 더 특별하게 해주는 것은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미디어아트를 한다니.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건물 외벽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앞을 잘 볼 수 없다는 것이 특별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손끝의 감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박환 작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찍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다섯 차례 입선하는 등 촉망받는 화가였다. 그러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빛조차 인지할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이 됐다. 절망스러운 시기였지만, 장애는 그의 예술혼을 없애지 못했다. 그는 연필 대신 실, 구슬핀을 들었다. 각종 재료로 스케치해서 위치, 방향, 두께, 색채 등을 표시한 뒤 그 위에 물감을 덧댄다.
이번에 전시하는 ‘복숭아꽃’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박 작가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아 시력을 잃기 전에 본 복숭아꽃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SKT타워 미디어 월 전시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내가 좌절과 절망을 딛고 복숭아꽃의 향기를 그렸듯, 관객들도 어떤 일이든 희망을 갖고 일어섰으면 한다”고 했다. 전시 제목이 ‘손으로 보는 감각, 손끝으로 전하는 희망’인 이유다.미디어 월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선사해준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한희주 작가가 자신의 지친 마음을 달래줬던 나무의 풍경을 그린 ‘쉼’이 그렇다. 망막박리를 앓고 있는 허은빈 작가가 일상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담아 그린 ‘행운을 전해주는 클로버 토끼’ 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모든 사람이 장벽 없이 함께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이달 28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