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도 교섭 의무…단, 하청노조 파업은 불가' 중노위 판정문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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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원청이 하청노조의 단체협약 체결 대상인지 여부는) 입법을 통해 규율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만, 아직 관련 규정이 없는 현실에서는 차선책으로 '해석론'을 통해 기준을 모색하는 '방법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인 사용자'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227쪽)의 일부이자 가장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원청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 단체교섭 의무는 지지만 단체교섭 체결이나 하청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행동은 불가하다는 초유의 결론이 난 바로 그 사건입니다. 직접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이 하청노조의 교섭대상이라는 판정은 물론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노동3권'을 분리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미증유의 판정에 노동법학자, 변호사 등 율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던 사건입니다. 중노위가 어떤 논리와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판정문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중노위는 지난해 12월 30일 대우조선해양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중장2022부노139) 사건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하청노조)의 구제 신청을 받아들이고 초심 판정을 취소했습니다.
주요 판정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임할 의무가 있지만 독자적으로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고 하청사용자와 공동의무를 진다.
-하청노조는 단체교섭 체결이나 파업 등 쟁의행위와 관련해서는 원청이 아닌 하청사업주를 상대로만 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단체교섭 의무만 부담하고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 사실은 공고하지 않아도 된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지위를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판정 과정에서 그간의 법리와 판례 등을 총동원한 대우조선해양과 하청노조 대리인의 주장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만 심판을 맡은 세 명의 공익위원은 기존의 법리가 아닌 새로운 '가치관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노동위원회가 헌법재판소냐"라는 일각의 비판과 결을 같이 하는 대목입니다.
중노위가 이번 사건에서 적극 인용한 논리는 대법원이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내놓은 '실질적 지배력설'이었습니다.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조건을 정함에 있어 실질·구체적 지배·결정권이 있다면 노동조합법 상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실질적 지배력설을 인용해 이번 사건의 판정에 사용된 주요 워딩입니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지고 형식적인 법률관계를 형성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3자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경우 형식적 관점에서만 단체교섭 당사자를 판단·결정하게 된다면 쟁점이 되는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 향상을 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직접 근로계약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제3자가 근로자의 노동력 제공 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영향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이 제3자와 직접 교섭할 수 없다면 실질적인 근로조건 향상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실질적 지배력을 긍정하는 입장이 내세우는 지향점을 고려하더라도 단체교섭 당사자 확정과 관련한 판단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기준 제시가 불가피할 것이고, 이와 관련해 가장 적절한 방법은 입법을 통해 규율하는 것이겠으나, 관련 규정이 제정되지 않은 현실에서는 차선책으로 해석론을 통해 그 기준을 모색하는 방법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노위는 그러면서 실질적 지배력 유무, 즉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로, 대법원의 판단 기준(△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는지 △보수·계약 내용을 특정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걸정하는지 △사업의 필수적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지 △특정 사업자와 지속·전속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임금, 급료 등 수입이 노무제공의 대가인지)을 적시했습니다.
요컨대 중노위는 이번 사건에서 원청이 하청근로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갖고 있다면 단체교섭에는 참여해야 하지만, 교섭을 넘어서 협약체결이나 교섭 결렬 시 쟁의행위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근로자 파견 관계와 달리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근로계약 관계를 매개하지 않은 당사자들 간의 합의에 단체협약에서와 같은 규범적 효력 관계가 직접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 사건 공익위원들의 판단입니다. 즉 원청 사용자에게는 공동사용자의 지위가 아닌, 단지 원사용자인 하청협력사와 함께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의무만이 부여된다고 볼 것이고, 궁극적인 단체협약 체결 당사자는 사내하청 협력사라는 결론입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위원장 교체 등 중노위가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여전히 노동계로 편향된 판정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반면 이번 판정을 두고 다양해진 고용형태 등 급변하는 노동시장에 걸맞는 입법을 촉구하는 노동위원회의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마침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가 열립니다. 이번 판정이 노조법 개정 입법 논의에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됩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