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아무것도 없는 초기 창업자의 마음가짐 [긱스]

전희재 세븐픽쳐스(넷플연가) 대표 기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삶을 달리기에 비유합니다. 오랜 진심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죠. 넷플릭스를 혼자 보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 ‘넷플연가’를 운영하는 세븐픽쳐스의 전희재 대표 역시 코로나19 기간 사업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하루키처럼 하루하루를 달려왔다고 얘기합니다. 전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초기 창업가의 마음가짐에 대한 글을 한경 긱스(Geeks)에 보내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lt;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gt;. 전희재 제공

마라톤과 초기 스타트업의 공통점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글을 꾸준히 써야 하는 자신의 업을 매일 하는 달리기에 빗댄다. 오랜 진심과 인내가 필요한 일을 종종 마라톤에 비유하곤 하는데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더 자주 달리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없는 초기 창업자에게 스타트업이란 어디로 달려야 할지, 언제까지 달려야 할지, 어느 속도가 적당한지 기준점 하나 없는 그런 조건의 마라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창업을 시작한 사람이 목표의 크기나 보상 때문에 버틴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는 사실 스타트업은 머릿속의 합리적 계산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도가 없는 코스를 달리는 일은 목표보다 과정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달리다가 우연히 만난 길 위의 풍경과 산들바람에 행복해하거나 종종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 일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매일 무언가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에 부닥치다 보니 결과적으로 얻게 된 마음가짐인지, 내 타고난 성향이 맞아 기꺼이 받아들이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정상을 바라보기보단 능선을 잘 타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것보다 더 높은 확률로 진흙탕을 달려야 할 때도 있고, 발가벗고 달려야 할 때도, 동료의 짐을 얹고 달려야 할 때도 있지만 앞의 이유들 때문에 뒤의 일들을 기꺼이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스타트업은 결국 시장 혹은 고객이 결정하는 거리를 잴 수 없는 일이고, 좋은 결과를 내려면 그 과정을 이유 불문하고 달려내야 하기에 이 일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그런 마라톤 게임과 비슷하다.
넷플연가 모임 장면. 세븐픽쳐스 제공

사소한 시작, 사소하지 않은 과정

"소설을 쓰자고 생각을 하게 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낼 수 있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였다. 그날,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관전하고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마음은 어떤 계기로 가지게 될까? 어떤 계기는 생각보다 너무 사소해서 말하기조차 민망해지는 경우도 있다. 20대 후반의 하루키는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홈런 치는 장면을 보고 불현듯 '소설 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전혀 인과관계가 없기도 하고, 사소한 일이라 농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가 넷플연가를 시작한 계기 역시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 장면과 비슷하다. 어느 날 새벽, 넷플릭스를 재미있게 보고 난 다음 원룸에 혼자 누워있는 나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넷플릭스를 혼자 보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고 싶다는 사소한 마음이 창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어떤 장면과 순간은 누군가의 마음에 태풍을 일으킬 만큼 강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심은 사소할지언정 그 후 겪어내야 하는 반복의 시간은 전혀 사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주인장으로 운영하던 재즈바가 닫는 자정 무렵부터 3~4시간씩 피곤한 눈을 비비며 몇 년간 글을 쓰면서 첫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결심 이후 엉덩이를 붙이고 글 속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반복의 시간을 겪어내야 하는 것이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셀 수 없는 실패와 작고 큰 몇 번 성공 후에도 10여 년이 흘러야 하루키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이름이 된다.

나에게도 겪어내야 하는 시간이 당연하게 찾아왔다. 아니,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우린 1년의 테스트와 고객 검증을 거쳐 서비스 오픈 준비를 마쳤는데, 2020년에 생전 본 적 없는 변수인 코로나가 찾아왔다. 오프라인 모임 사업에 기약 없는 연기가 계속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뉴스로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확인했다. 20만원을 내고 등록한 고객들이 코로나와 사적 모임 제한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매일같이 정상 서비스 여부를 물어왔기 때문에 우울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오늘도 연기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매일처럼 고객과 모임장들에게 사과 문자를 썼고 다시 우울한 기분으로 퇴근했다. 그런 일들이 2년이 넘어가니 누구나 망할 거라고 예측하고 충고를 건넨다. '그만하면 됐고, 이만하면 잘했다'고 내 의지를 넘어선 일들이 반복되니 달리기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가 와서, 팀원이 힘들어해서, 다리가 아파서,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등등 내가 달리기를 그만둘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많았다. 실제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두지 않을 이유도 있었는데 사실 그 이유는 그만둘 이유만큼 논리적이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내 삶의 큰 변곡점들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만들어졌고 나는 종종 논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lt;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gt;의 한 페이지. 전희재 제공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찾은 답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일이다. 오해가 없도록 말하자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한 뒤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달리기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는 일이다. 하루키의 말대로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달려야 한다.

달리다 보면 내게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들이 온전히 쌓이고, 사업과 관련된 힌트를 발견해내는 운이 따르기도 하기에 이 반복이 무용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의 일상은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도, 버스를 타서도, 회의를 하면서도 우리가 목격한 고객들의 불편함과 욕구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우리가 만들 사업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인지를 고민하는 일의 연속일 텐데 아무렴 오래 생각하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머리를 굴리다 보면 운이 찾아올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내일이 되기 전엔 도저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코로나가 덮친 시간을 보내면서 말 못할 일들이 참 많았다. 다들 답 없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정신없이 지나오니 시장에 있던 몇십 개의 커뮤니티 스타트업들이 사라지고, 두세 개만 남아 있었다. 우리 역시 이런 시장 상황을 예측한 것이 아니다.

'운 반, 버팀 반'으로 코로나가 끝날 무렵 우리는 투자를 받게 되었고,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달려온 시간은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유지하는 경제적 해자를 만들어줬다.

누군가는 스타트업 대표라면 탁월한 '시장'과 '사업'을 보는 안목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스타트업을 하면 내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게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면 할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운영은 나만 잘하면 충분한 게임이 아닌, 고객 스스로도 모르는 욕구와 불편을 발견해내는 일이며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도, 혹독하게 얼어버린 자본 시장도 변수로 포함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초기 창업자는 아직 팀도, 돈도, 경험도 없기 때문에 어쩌다 해낸 성과 하나를 기반으로 다음날 달리기를 준비해야 한다. 내가 초기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배운 중요한 것 하나는 '의지'만큼 중요한 것은 '초연함'이란 사실이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달리다 보면 꽤 괜찮은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믿는 하루키처럼, 많은 사람의 일상을 바꾸는 꽤 괜찮은 스타트업을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냥 오늘치 달리기를 하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을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로 정해 두었다고 한다.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누가 뭐라고 하든 오늘도 달리러 나간다.
전희재 | 세븐픽쳐스(넷플연가, 문학자판기 구일도시) 대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PD
△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
△ 아산나눔재단 스타트업팀 매니저(인턴)
△ 수영 선수 (8년, 전국소년체전 입상)
△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 대구외국어고 영어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