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정찰하고 로봇이 전투…'無人전쟁' 시대 온다

안보 판도 바꾸는 인공지능
러시아·우크라, 로봇차량 투입
격돌 땐 최초의 '무인전투' 기록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군사 연구기관 TNO에선 군사 훈련의 판도를 바꿀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워게임(전쟁 시뮬레이션)’이다.
전장은 숲이 울창한 가상의 어느 평지. 한 마을을 지켜야 하는 청군과 점령해야 하는 적군이 지형과 병력을 고려해 최적의 전략·전술을 펼친다. 기존의 워게임과 다른 점은 참여자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것이다.‘훈련’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적군의 예상 이동 경로, 전투 발생 지역, 사상자 등의 정보가 뜬다. 두 사람이 수십 시간에 걸쳐 진행할 워게임을 AI는 단 몇 초 만에 끝낸다. TNO는 네덜란드 국방부 의뢰로 이 같은 연구를 수행 중이다.

AI가 국방 분야의 ‘게임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무기 유지·보수, 정찰, 훈련, 의사결정 등 AI 활용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AI가 전쟁을 바꾼 사례다. 타스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무인전투차량 ‘마르케르(Marker)’를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레오파르트2 전차 등 무기를 추가 지원하는 데 따른 대응이다. 마르케르는 무한궤도 위에 유탄발사기·기관총 등을 장착한 무인전투차량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에스토니아가 생산해 독일이 제공한 무인전투차량 테미스(THeMIS) 14대의 출격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두 차량이 맞붙는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인로봇이 격돌하는 첫 번째 전쟁으로 기록된다.AI의 활용은 무인전투로봇에 그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테크기업인 클리어뷰의 AI 안면인식 기술을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는 데 쓰고 있다. 정보를 통제하는 러시아 당국 대신 병사의 전사 사실을 유족에게 알려 동요를 일으키는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지리정보체계(GPS)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ESRI는 AI를 통한 정찰 기능을 제공한다. 가령 ESRI가 사전에 공개된 몇몇 지대공미사일(SAM) 발사대의 위성사진을 AI에 입력하면, 비공개된 SAM 발사대 추정 장소까지 찾아주는 방식이다. ESRI는 2018년께부터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과 실제 작전에서 협업하고 있다.

네덜란드 테크기업인 플루어거나이즈는 선박 유지·보수 기간을 단축시켜 해군의 원활한 작전을 돕고 있다. 개별 항만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빅데이터로 분석함으로써 항만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AI가 전장에 도입되는 데 따른 우려도 없지 않다. 바로 ‘킬러 로봇’에 대한 윤리적·법적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로봇이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사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잔 티멘 닌 블록 네덜란드 적십자 법률고문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있듯 로봇과 관련한 조약과 국제법이 필요하다”며 “이런 필요에 동의하는 국가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와 한국은 군사적 영역에서의 책임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장관급 회의(REAIM)를 15~16일 헤이그에서 공동 개최한다.

헤이그=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