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하이닉스도 다 빼앗겨"…반도체 인력쟁탈전 '비상' [정지은의 산업노트]

김기남 회장·박정호 부회장, '인력 리스크' 토로
'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인텔' 먹이사슬
글로벌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 속
'인력 확보' 최우선 과제로 꼽아
김기남 삼성전자 SAIT 회장·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사진 왼쪽). 사진=연합뉴스
“마이크론이 우수 인재를 키워놓으면 인텔이 데려간다. 그러면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력을 뽑아간다.”(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인력 문제는 한국 반도체의 가장 큰 리스크다.”(김기남 삼성전자 SAIT 회장)김기남 삼성전자 SAIT(종합기술원) 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원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로 ‘인력 확보’를 첫 손에 꼽았다.

○"삼성 혼자선 못 해"…정부·학계 협력 강조

김 회장은 이날 ‘한국 반도체산업의 현황과 미래’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맡아 인재 육성을 비롯 △기술 혁신 △정책적 지원 확대 △생태계 조성 등 네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기술 혁신을 추진할 핵심 연구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삼성이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봐도 잘 안 된다”며 “인력 육성은 기업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국가와 학계, 산업계가 협력해 풀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세제 혜택, 인프라 지원, 보조금 지원 등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 회장은 “미국은 반도체 육성예산 527억달러 중 74%(390억달러)를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로 편성한다”며 “적어도 미국 중국 대만 등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텔도 엔비디아에 인력 빼앗겨"

박 부회장은 ‘반도체 인력 유출’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2031년 학사·석사·박사 기준 총 5만4000명 수준의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이크론은 2013년 일본 엘피다를 인수하면서 일본 인재 덕분에 D램을 빠르게 키웠다”며 “인적 경쟁력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 전반에 인력 쟁탈전이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박 부회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인력을 빨아들이는 인텔 마저 우수 인력을 구글, 엔비디아 등에 빼앗기는 식”이라고 우려했다.

대화형AI ‘챗GPT’의 확산으로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박 부회장은 “글로벌 데이터 생산, 저장,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챗GPT가 반도체 수요의 새로운 ‘킬러 앱’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AI가 주목받으면서 소프트웨어 분야로만 기술 인재가 쏠리는 현상은 우려점으로 꼽혔다. 김 회장은 “소프트웨어로만 인력이 몰려선 안 된다”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두루 발전하도록 학교가 그 균형을 단단히 맞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