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극점에서 생각 난 황도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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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 스콧 대령 간의 남극점 최초 정복전을 가른 요인 중 하나는 장비 구성이었다. 스콧은 1911년 당시로는 첨단 장비인 모터 썰매 3대와 만주산 조랑말 19마리, 시베리아산 개 34마리, 과학자 12명을 포함한 총 55명의 대원으로 팀을 꾸렸다. 반면 아문센 팀은 그린란드산 개 100마리와 일행 9명이었다.
모터 썰매는 장비를 내릴 때부터 바다에 빠져 무용지물이 됐고, 눈을 무서워하는 조랑말은 짐꾼이 아니라 짐이 된 탓에 모두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 썰매 개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전부 잃은 뒤에는 사람이 짐을 끌고 다녀야 했다. 아문센팀보다 5주 뒤에야 남극점에 다다른 스콧 팀 선발대는 돌아오는 길에 동상과 극도의 체력 저하, 실명에 시달리다 모두 숨을 거뒀다.극지 탐험에서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빠른 이동을 위해 장비를 최소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식량도 몽골군의 육포나 군대 시레이션처럼 보관·조리가 쉬운 것들로 준비한다. 한국인 최초로 혼자서 무보급으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산악인 김영미 대장은 마장동에서 사 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끓인 즉석국을 동결해 싸가서 50일 원정 기간 내내 먹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하루 4500칼로리에 맞춰 차에 연료 주입하듯” 먹었다는 것이다.
강풍과 근육통, 외로움 속에 매일 똑같은 음식까지, 그런 극한 상황에서 간절히 먹고 싶은 게 있었다는데 ‘황도 캔’이었다. 어르신들에게 ‘복숭아 칸즈메(간스메·통조림)’로 익숙한 황도 캔은 한때 병문안 필수품 중 하나였다가, 이제는 호프집 사이드 안줏거리 정도가 됐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달콤한 게 당기는 것 같다. 작년 11월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 후 10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생존자가 가장 먹고 싶었다는 음식은 ‘콜라’였다. 외로움은 추억과 향수의 먹거리를 소환하기도 한다. 남극 기지 대원들의 애환을 코믹 터치한 일본 영화 ‘남극의 쉐프’의 하이라이트는 간수를 직접 만들어가며 라멘을 끓이는 것이었다.김 대장에게도 황도 캔에 얽힌 기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김일영 시인의 <황도> 중 한 대목이다. “한 숟갈 떠 넣으시다 말고/내 입에 한 조각 한 조각 넣어주시던/하얗고 마른 손/아버지는 빈 깡통처럼 가셨고/오늘은 열에 들뜬 조카의 작은 입에서/황도 과육이 눈부시게 녹아내린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모터 썰매는 장비를 내릴 때부터 바다에 빠져 무용지물이 됐고, 눈을 무서워하는 조랑말은 짐꾼이 아니라 짐이 된 탓에 모두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 썰매 개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전부 잃은 뒤에는 사람이 짐을 끌고 다녀야 했다. 아문센팀보다 5주 뒤에야 남극점에 다다른 스콧 팀 선발대는 돌아오는 길에 동상과 극도의 체력 저하, 실명에 시달리다 모두 숨을 거뒀다.극지 탐험에서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빠른 이동을 위해 장비를 최소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식량도 몽골군의 육포나 군대 시레이션처럼 보관·조리가 쉬운 것들로 준비한다. 한국인 최초로 혼자서 무보급으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산악인 김영미 대장은 마장동에서 사 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끓인 즉석국을 동결해 싸가서 50일 원정 기간 내내 먹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하루 4500칼로리에 맞춰 차에 연료 주입하듯” 먹었다는 것이다.
강풍과 근육통, 외로움 속에 매일 똑같은 음식까지, 그런 극한 상황에서 간절히 먹고 싶은 게 있었다는데 ‘황도 캔’이었다. 어르신들에게 ‘복숭아 칸즈메(간스메·통조림)’로 익숙한 황도 캔은 한때 병문안 필수품 중 하나였다가, 이제는 호프집 사이드 안줏거리 정도가 됐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달콤한 게 당기는 것 같다. 작년 11월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 후 10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생존자가 가장 먹고 싶었다는 음식은 ‘콜라’였다. 외로움은 추억과 향수의 먹거리를 소환하기도 한다. 남극 기지 대원들의 애환을 코믹 터치한 일본 영화 ‘남극의 쉐프’의 하이라이트는 간수를 직접 만들어가며 라멘을 끓이는 것이었다.김 대장에게도 황도 캔에 얽힌 기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김일영 시인의 <황도> 중 한 대목이다. “한 숟갈 떠 넣으시다 말고/내 입에 한 조각 한 조각 넣어주시던/하얗고 마른 손/아버지는 빈 깡통처럼 가셨고/오늘은 열에 들뜬 조카의 작은 입에서/황도 과육이 눈부시게 녹아내린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