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도둑 맞은 기분"…돌아온 존 리, 인생 2막 꿈꾼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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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 전 메리츠운용 대표 인터뷰"인터넷 기사들이 제 이름으로 도배되던 작년 6월은 끔찍한 악몽이었어요. 매일, 타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듯한 느낌을 겪었달까요. 회사를 알리는 데 무려 9년을 바쳤는데 하루아침에 제가 그 브랜드를 망친 사람으로 둔갑했더라고요. 아내 계좌를 이용해 불법 투자를 했다면서요. 급기야는 금융업에 발을 들인 30년의 세월을 송두리째 도둑 맞은 기분이 들었죠."
신간 으로 복귀
"9년 바쳤는데 하루사이 파렴치한 됐다"
파주서 가족캠프 시작…금융문맹 해소 목표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작년 차명투자 의혹이 불거지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들의 탄생으로 가치투자 1세대들의 시대가 저물고는 있었지만, 누구도 이런 식의 이른 퇴장을 예상하진 못했다. 월가에서 스타매니저로 활약하던 존 리 전 대표는 2013년 말 메리츠자운용의 새 수장으로 합류해 '메리츠코리아펀드' 등을 중심으로 운용 규모를 키웠다. 매스컴에서 수많은 주식투자 명언을 쏟아내며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던 그였다. 하지만 취임 약 10년 만인 지금 그는 무소속이고 회사는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에 팔렸다.
최근 출간한 책 <존 리, 새로운 10년의 시작>에서 존 리 전 대표는 메리츠자산운용에서의 경험을 정리하고 향후 10년의 계획을 담았다. 그의 사임을 즈음해 줄곧 따라다녔던 질문 '차명투자 의혹에 대한 심경은 어떤가', '회사를 왜 물러났나' 등에 대한 답도 풀어냈다. <한경닷컴>은 지난 15일 서울 남산동 한국국제금융연수원에서 존 리 전 대표를 만났다. 언론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논란 이후 8개월여 만이다.
"30년 평판 무너지는 것 한순간…차명투자 사실 아냐"
그는 "첫 보도가 나온 뒤로 본인 확인을 거치지 않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억울한 입장을 설명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고, 주변에선 '괜히 논란만 더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만류했다"면서 잘못을 인정해 자진사퇴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존 리 전 대표는 이제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미국으로 다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결국 그는 한국에 자리잡기로 했다. 현재로선 다시 자산운용사를 차리거나 금융권에 취업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신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시절부터 실천해온 '찾아가는 강연'의 판을 키워보겠단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전 국민을 '금융문맹'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인생 2막 대주제는 금융문맹 해소…"벌써부터 벅차"
이를 위한 첫 프로젝트로 최근 금융교육 프로그램인 '존 리의 부자학교'를 시작했다. 경기 파주시의 '영어마을'을 대관해 주 단위로 1박 2일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가족 단위가 참여하는 '패밀리 캠프'란 점이다. "개개인이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한마음이 돼 시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존 리 전 대표는 설명했다. 취지가 이렇다보니 며느리와 시아버지, 신혼부부, 아버지와 초등학생 아들 등이 함께 찾아 금융교육을 받고 갔다. 존 리 전 대표는 비수도권 거주자, 금융소외자들을 주된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들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대상의 '코리아 퓨처 빌리어네어 클럽'을 비롯해 '직장인 투자 교실', '주부 투자 교실' 등의 오프라인 정기 강연들이다.존 리 전 대표는 앞으로의 10년을 '다음 세대를 위한 금융교육'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아직 우리나라 금융시장엔 애로가 많다. 그는 한국의 경제대국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금융교육', '창업정신', '여성인력 활용' 등 세 가지의 부재를 꼽았다. 그는 "국민 대부분의 금융 이해도가 낮아 조기 금융교육이 요원한 일이 된 데다, 이른바 '국영수'만 강조되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사고를 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의 창업정신도 사라졌다"고 설명했다.여성 금융인의 부재에 대해선 "이들이 제대로 대우받지도, 활용되지도 못하는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며 "여성인력의 활용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유연하고 변화에 강할 뿐 아니라 수익성도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성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구조적 문제이지만 여성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흔히들 남성들과 경쟁해서 이겨야만 임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직접 금융회사를 창업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라며 "미래를 그릴 때 보다 적극적이고 담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올 들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는 증시에 대한 조언도 내놓았다. '커피값 아껴 주식 하라'는 지론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2500도 안 되는 지금 한국 주식 중엔 여전히 탐나는 값싼 주식들이 많다. 타이밍에 투자하려들지 말고 소액으로 꾸준히 나눠 투자하라"며 "적립식 연금저축 펀드라든가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면 좋다"고 말했다. 덧붙여 "최근에는 행동주의 펀드들에 의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인수합병(M&A)의 조짐이 있는 종목들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인터뷰를 끝내기 전 존 리 전 대표는 기사에 꼭 담아달라며 말을 남겼다. "한국인의 90%가 배당소득과 같은 금융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금융자산을 갖게 하는 게 제 소원입니다. 앞으로 10년간 많은 사람의 경제독립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금융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일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벅차올라요. 이젠 '한국 금융교육의 선봉자'란 새로운 수식어로 불리고 싶어요."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