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디자인혁신' 시동 건 서울, 글로벌 톱5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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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시장 '국제 수변공간 한강' 이어선거의 묘미는 역시 변화다. 중앙권력의 변동과는 사뭇 다르지만 유권자 선택에 따른 자치행정의 변화에도 관전거리, 체감거리가 적지 않다. 오세훈-박원순-오세훈으로 왔다 갔다 한 서울시장 다툼에선 더 그렇다. 도시 성장 전략과 발전 프로세스가 선명하게 비교된다.
'창의 작품 건축물' 유도 나서
멋·매력 발휘하려면 투자 필요
규제 완화만 해도 큰 효과
녹지 확보도 용적률 인센티브로
지방 아닌 도쿄·상하이가 경쟁자
허원순 논설위원
최근 나온 서울시의 ‘도시·건축 디자인혁신 방안’은 지난해 5월 ‘한강변을 국제적 수변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공간구상 추진’이라는 긴 제목의 발표 자료와 그대로 맥락이 닿는다. 이 두 건만으로도 ‘오세훈 브랜드’의 밑그림은 그려진다. 10여 년 전에 내걸었던 ‘한강 르네상스’의 연장으로 일관성이 분명하다. 글로벌 거대도시에서 마을공동체를 추구하고, 35층 아파트 규제를 고수하며, 관변단체 난립을 북돋운 ‘박원순 이미지’와 대조적이다.디자인혁신 발표 때 오 시장은 몰려든 기자들을 상대로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브리핑에 나선 데서 그의 열정이 엿보였다. “건물 하나가 도시 운명을 바꾼다”는 말로 현대도시의 발전 전략에 대한 시장 철학을 제시했고, “서울을 찾은 관광객이 ‘볼 게 없네’ 하고 돌아서지 않게 하겠다”는 대목에선 결기도 보여줬다. 현실감이 있고, 의지도 좋다.
그의 말이 아니어도 미(美)와 쾌(快)는 인간 본연의 추구 대상이다. 근대 관념 철학의 창시자인 칸트는 일찍이 이론과 관념으로 미·쾌의 본질을 길게 설명하고 다른 인간의 보편 가치(이성·도덕)와 함께 그 의미를 설파했다. 인간사회 문명·문화의 총체적 성과물인 대도시도 결국 미와 쾌, 편리 수준으로 우열을 평가받는다. 오 시장이 디자인혁신과 한강 수변공간 업그레이드라는 쌍두마차 프로젝트를 체감형 행정으로 내실 있게 구현해내기 바란다. 그렇게 되면 그의 ‘세계 5대 도시(모리재단 평가) 진입’ 목표도 충분히 가능하다. 민관이 상상력을 잘 발휘하면 바로 앞의 싱가포르와 암스테르담 추월은 머지않았다.
‘글로벌 톱5 도시 서울’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멋 내고 매력을 발휘하는 데는 무엇보다 돈이 든다는 대전제를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르락내리락 좁은 길의 허름한 시멘트블록 벽에 거친 페인트 그림으로 ‘인정과 인간’을 외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서울이 그보다는 세련돼야 한다. 디자인도, 관광도 ‘산업’으로 발전하자면 돈이 필요하다. 주체가 어디든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결과가 나오고 그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도 생긴다는 사실을 경시해선 안 된다. 디자인혁신 건물이 다채롭게 들어서는 데는 자금이 더 든다. 응당의 비용 없이 찬사를 불러일으키고 감동도 주겠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그런 추가 비용에 대한 세제 혜택과 부담금 경감을 정부와 협의하면서 시의회를 통한 지원 조례를 강구해볼 만하다.둘째, 가급적 시 예산을 안 쓰면서 투자가 이뤄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인센티브 행정으로 상당 부분 가능하다. 예컨대 대도시의 최대 고민인 녹지 확보에선 용적률 인센티브로도 공공녹지를 유도해낼 수 있다. 뉴욕은 그렇게 하늘로 치솟으며 공원·녹지 비율이 서울보다 7배나 높은 세계 최고 수직 도시가 됐다. 토목기술과 건축공법이 날로 발달하다 보니 지하 도시로의 확장도 의미 있다. 이렇게 해서 올해 47조원인 서울시 예산을 소외지대에 더 쓰고 다른 창의행정 재원으로 활용하면 일석이조 아닌가. 어느 분야든 공공자금을 적게 쓰면 민간의 자율이 반사적으로 더 확충된다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 ‘건전 재정’이 시대의 화두라는 점을 감안하면 돈 안 쓰고 행정 목표에 접근하는 자치 모델은 중앙정부도 배울 것이다. 인센티브 행정의 다른 말은 간섭배제와 규제혁파인 만큼 자연스레 서비스 행정이 된다는 점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셋째, 서울 발전 전략의 국제화는 물론 경쟁 대상도 철저하게 글로벌 대도시라는 점을 25개 자치구에까지 잘 전파해야 한다. 매사 지방과 비교하며 ‘수도권 역차별’ 운운해봤자 남는 게 없다. 언필칭 국가 간 경쟁이라지만 실상은 대도시 중심의 지역·권역 간 패권 다툼 시대다. 서울의 발전도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과 광역 도쿄, 상하이경제권 간 메갈로폴리스 경쟁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과 문화, 나아가 서울의 기본 인프라가 이 경쟁에서 밀리면 한국의 장래는 어둡다. 서울이 ‘도시 진화’의 새 모델을 만들며 최고 미래 도시로 성장하는 게 곧 한국의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