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비, 불법관행 아닌 임금" 뒤집힌 판결…건설사 '당혹'

1심 "월례비는 근절돼야 할 관행"
2심 "관행상 인정되는 임금" 뒤집어
건설사들 "황당" 노동계는 "환영"
대법 판결 나오면 '월례비 근절' 정부정책도 영향
사진=한경DB
정부가 근절 대상으로 삼고 있는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지급되는 월례비가 사실은 '임금'이므로 부당이득이 아니라는 2심 법원 판결이 나왔다. 월례비가 '근절돼야 할 관행'이라는 1심의 판단을 뒤집은 내용이라 눈길을 끈다.

광주고등법원(재판장 박정훈)은 지난 16일, D건설이 타워크레인 회사 소속 운전기사 16명을 상대로 청구한 6억 5400만원가량의 부당이득 반환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원고 D건설의 청구를 기각했다(2021나22465).원고인 D건설은 2016년 9월부터 2019년 사이 광주 서구의 건설 현장에서 발주사(원청)인 서진종합건설, 중흥건설로부터 6곳의 공사 현장에서 하도급 업무를 받아 수행해 왔다.

원청인 발주사들은 기사들이 소속된 타워크레인 회사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지급해 왔다.

하지만 기사들은 소속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과 별도로 하청업체인 D건설로부터도 '업계 관행'을 이유로 시간외근무수당(고정OT) 명목 월 300만원을 지급받았다. 지급은 본인이나 가족, 지인 명의 계좌로 지급돼 왔다.D건설은 "월례비는 계약관계 없이 지급된 돈이므로 부당이득"이라며 이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 기사들은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회사가 기사들에게 지급할 돈을 D건설이 대신 지급한 것이거나, 사실상 D건설이 자신의 지휘를 받는 크레인 기사들에게 지급한 임금 혹은 위험부담에 대한 사례금"이라는 취지로 맞섰다. 이어 D건설 등이 가입하고 있는 사업자 단체인 광주·전남 철근콘크리트 협의회가 지역별 월례비 상한액을 정한 점을 들어 "월례비 지급 의무를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월례비, 근절돼야 할 관행"

앞서 1심 법원은 월례비 지급에 법률상 근거가 없는 부당이득이라고 판단했다(2019가합59979). 1심 재판부는 "기사들은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타워크레인 회사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아왔으므로, D건설이 타워크레인 회사를 대신해 임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미 D건설이 기사들의 연장근무에 대해 고정OT 비를 지급하고 있다는 점도 들어, 월례비를 연장근로에 대한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광주·전남 철콘협의회가 지역별 월례비를 정한 것에 대해서도 "회사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에서 정한 것이지 월례비 지급 의무를 지우려는 목적으로 마련한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이미 타워크레인 회사와 고용관계를 맺은 기사들과 D건설 간에 사실상 고용관계를 인정할 이유가 없다"며 "위험 부담의 대가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근로관계가 있는 소속 타워크레인 회사에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월례비 자체가 부당하다고도 판단해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타워크레인 회사가 부담할 인건비를 합리적 이유 없이 하도급 업체들에 전가하고 있고, 지급액도 하도급사와 기사들 간 합의로 정하는 게 아니라 공사 현장이 위치한 지역 관행 등 업무와 무관한 요소로 결정된다"며 "허위 회계처리, 소득세 탈루 등 조세법상 불법적 결과가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월례비 지급은 근절돼야 할 관행"이라고 꼬집었다.다만 재판부는 '비채변제'임을 근거로 D건설사의 반환 청구 자체는 기각했다. 비채변제란 자신이 상대방에게 채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임의로 금원을 지급한 것을 말한다. 민법은 이 경우에는 반환 의무를 부정하고 있다.

◆2심 "수십년 관행"…1심 판시 뒤집어

2심도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월례비에 대한 판단 자체는 완전히 뒤집혔다.

재판부는 "월례비 지급은 수십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판단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월례비가 없으면 작업을 할 이유가 없다"고 증언한 점을 근거로 "월례비를 주기로 묵시적 계약이 성립했다"고 판시했다.

1심과 달리, 광주·전남 철근콘크리트 협의회들이 월례비 액수를 통일한 점, 원청 시공사와 하청 사이 하도급 계약서에 월례비 규정은 없지만 일부 현장 공사설명서와 특기시방서에 월례비에 대한 언급이 있는 점도 근거로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월례비 지급에 대한 의사 합치는 있었던 것"이라고 봤다. 특별히 기사들이 월례비 지급을 강제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아직 하급심 판단이지만,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이 나오느냐에 따라 정부가 진행 중인 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월례비를 요구하는 조종사에 대해 형법상 공갈죄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 해석을 내놓았고, 월례비를 받은 조종사에 대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작업에 착수하기로 한 상황이다.

지난 1월 19일 국토부가 내놓은 ‘건설 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실태조사’에서도 2주간 접수된 총 2070건의 불법행위 중 대다수인 1782건(86.1%)이 ‘타워크레인 월례비’(1215건, 58.7%)와 ‘노조 전임비’(567건, 27.4%)다.

하지만 월례비가 '임금'이라면 정부의 '불법' 주장이 설 자리를 잃는다. 노동계는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이 입증됐다"며 환영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반면 건설사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조금이라도 월례비를 줄이기 위해 상한액을 정해놓은 것을 월례비 지급의 근거로 본 것이나, 1심에서 '근절돼야 할 부당한 관행'이라고 판시한 것에 대해 2심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2심은 월례비 지급에 관한 묵시적인 계약을 인정했는데 근로계약 성립의 주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1심판결이 지적한 바와 같이 월례비 지급은 업계의 잘못된 관행이라면 잘못된 관행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한 2심판결의 결론에 다소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