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원만 벌어도 감사"…70대 택시 기사의 '눈물' [권용훈의 직업 불만족(族)]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직업 못 찾아
최저임금 밑돌지만 100만원 벌어도 감사

가만히 노년 보내기엔 물가 너무 올라
더 늙었을 때 자식에 짐만 되지 않았으면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터미널 인근 택시 승강장에 빈차 표시등을 켠 택시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권용훈 기자
지난 17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인근 택시승강장. 지하철로 향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호객을 하고 있던 70대 택시 기사를 만났다. "출근한 지 4시간이 넘었지만 손님을 1명밖에 못 태웠다"는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자면.
서울에서 택시 운전대만 20년 넘게 잡았습니다. 올해로 71살이에요. 집안 형편이 나빠져 개인택시 면허를 팔고 3년 전부터 법인 택시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가 어떻게 되나요.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 정도에 퇴근해요. 야간 근무자와 교대하는 거죠. 나이가 많은 기사들은 야간 운전을 하기가 어렵거든요. 주로 낮에 일하고 있어요.▷월급은 얼마나 받고 있나요.
통장에 찍히는 돈은 100만원대 초중반 정도입니다. 법인 택시기사들은 한 달에 26일을 꼬박 일해야 기본급을 받아요. 하루라도 빠지면 8만원씩 월급에서 깎입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잘 받으면 200만원 가까이 받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죠.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실수로 교통법규를 위반해서 벌금도 내야 하고요. 하루 15만원 정도 사납금 명목으로 회사에 택시 대여료(기본운송기준금)를 내야 해요. 남은 돈을 회사와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구조에요. 제시간 안에 할당량을 못 채우면 또 월급에서 차감되고요. 적은 월급으로 보이겠지만 이 나이에 이만한 벌이도 쉽지 않아요.
▷기본요금이 오르면 택시업계에 좋지 않나요.
지금은 택시업계가 비수기라 조용한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사납금 인상 얘기가 나올 겁니다. 그럼 법인택시 기사들은 수입에 변화가 없어요. 또 기본요금 인상 이후로 손님이 엄청나게 줄었어요. 개인 택시기사들도 힘들겠지만 법인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적자에요. 저도 어제 12시간 일해서 8만6600원 벌었습니다. 회사에 사납금 내기도 모자란 금액이죠.▷택시 기사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들었는데.
개인택시 면허를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일을 알아보려고 했죠. 70대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자리도 마땅치 않았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한숨).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야간 운행을 할 때 뒷자리에 타고 있던 20대 손님이 차 안에서 침을 뱉고 욕설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들뻘 되는 학생과 싸우려니 뭐 하는 짓인가 싶고 해서 조용히 목적지에 내려다 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야간에 택시 운전하면 취객을 상대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위험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택시 기사들이 되도록이면 야간 운행을 피합니다.

▷다른 일을 하실 생각은 없나요.
젊은 사람들은 택시 기사를 그만두고는 택배나 배달 일을 하더라고요. 저도 당연히 벌이가 더 좋은 택배나 배달 일하고 싶죠. 그런데 제가 가도 써주질 않고 몸도 따라주질 않으니... 다른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1990년대에는 아파트 창문과 난간을 타고 빈집을 노리는 도둑이 많았어요. 저도 새벽까지 택시 일을 하면서 아파트 외벽을 오르던 도둑을 목격했었죠. 곧장 경찰에 신고해서 현행범으로 잡았어요. 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고맙다고 콜택시를 몰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 목표가 있나요.
더 늙었을 때 자식들에게 짐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이 들어서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로도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에 민폐 안되게 안전 운전하는 게 목표에요.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대(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터뷰 요청·제보 바랍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