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급망 안정화 위한 '공급망 기본법' 제정 시급하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지금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동안 진행됐고 공산권이 몰락한 1990년대 이후 확립된 글로벌 공급망은 최근 기술 패권 경쟁과 코로나19 그리고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지역화·블록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신뢰에 기반한 글로벌 교역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해외에 크게 의존하는 글로벌 통상국가 대한민국은 이런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완성한 공급망 보고서를 기반으로 지난해 8월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전략산업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컨트롤타워로 공급망 태스크포스를 운영 중이다. 유럽연합(EU)도 작년 2월에 공급망 실사안을 발표했으며, 위기 시 필수품목과 서비스를 대상으로 단일시장 긴급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조만간 역내 핵심 원자재의 안정적 생산과 조달을 규정하는 핵심원자재법의 구체적인 내용도 발표할 것이다. 일본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고 5000억엔 규모의 기금을 신설해 대응에 나섰다. 중국은 첨단기술과 공급망의 자급화를 추진하면서 희토류 전략 자산화를 위한 제도적 준비를 마쳤다. 동남아시아와 남미는 공급망 하류 부문에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공급망 위험을 예방하고, 위기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제도적 틀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공급망기본법이다. 공급망기본법에는 공급망 전체를 조망하고 범부처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급망 컨트롤타워를 포함해야 한다. 또 정보 공유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유체계를 도입하고 효율적인 조기경보체계의 운용을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 공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공급망 안정화 계획을 제안하는 민간기업에 대해 재정 금융 정보 등 다양한 부문에서 지원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어야 하고, 위기 대응 매뉴얼을 갖추며 공급망 안정화 조치를 위한 공급망안정화기금도 조성할 필요가 있다.

1602년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것은 향신료 산지로 알려져 있던 동인도지역과 안정적인 교역망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인을 사로잡은 육두구와 정향이 나던 말루쿠 제도는 당시 포르투갈과 자바인들이 구축해 놓은 지역 공급망 안에 있었다. 네덜란드가 이 블록을 깨고 자신만의 공급망을 구축, 번영을 구가하게 된 데는 동인도회사라는 기관이 큰 역할을 했다. 우리도 공급망기본법을 통해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