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론 아직 좀 쌀쌀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많이 풀렸지요? 지난겨울은 유독 추웠던것 같아요. 기온 차이가 커서 더 그렇게 느꼈으려나. 올해 1월 가장 따뜻했던 날과 추웠던 날의 기온 차이가 무려 19.8도. 기상청이 전국 기온을 조사한 이후 가장 큰 기온 차였대요.
그래도 저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 큰맘 먹고 산 거위털 패딩(구스다운) 점퍼 덕분에 춥지 않게 잘 버텼죠. 거위털이 없었더라면 꽁꽁 얼어붙었을지도. 고마운 거위, 토닥토닥.
말 나온 김에 이 땅의 겨울이 이만큼 춥지 않던 그때 그 시절로 여행을 떠나 봅시다. 가능한 한 먼 옛날이었으면 좋겠네요. 자, 그럼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출발~
이럴 수가. 제 기도가 너무 간절했나 봐요. 무려 1000년 전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오고 말았네요. 하긴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우리밖에 없을 거예요. 그쵸? 풉. 그럼 오늘의 이 소중한 여행을 기록할 종이와 펜을 꺼내 볼게요. 가방 어딘가에 넣어 놨는데… 좋아요, 찾았어요.
이런, 맙소사. 펜이 나오질 않아요. 벌써 다 쓴 건 아닐 텐데 구멍이 막혀 버렸나. 이유야 어떻든 펜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봐야겠어요. 단단하면서도 가느다란 튜브 형태의 무언가를…. 그 물건의 끝을 뾰족하게 잘라내 잉크를 묻힌다면 웬만한펜 못지않을 거예요. 주변을 둘러봅시다. 흠….
아얏! 방금 무언가 제 옆구리를 찔렀어요. 이런, 솜털(가슴 부위에 분포, down)로만 가득해야 할 패딩 점퍼 속에 웬 커다란 깃털(날개나 꼬리 부위에 분포, quill)이! 깃대의 끝(calamus)이 뾰족해서인지 점퍼의 천을 뚫고 밖으로 삐져나왔나 봐요. 쩝.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 거위 깃털로 펜을 만들어 봅시다. 깃대의 끝부분을 뜨겁게 달궈서 날카롭게 잘라내면 충분히 펜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펜(pen)이라는 단어도 사실 새의 깃털을 의미하는 라틴어 ‘penna’에서 비롯되었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전에는 커다란 새의 날개 깃털을 펜으로 사용했다~ 이말입니다. 이름하여 깃펜(quill pen). 종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는 분명 끝이 뭉뚝한 붓보다 훌륭한 성능을 발휘할 거예요. 제가 장담하죠.
거위 깃털의 줄기인 깃대는 우리 손톱처럼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요. 이 깃대를 뜨거운 모래에 넣고 살살 돌리면 단단해지고, 끝부분을 칼로 쓱 도려내면 미세한 구멍이 뻥 뚫린 관을 얻을 수있죠.
자, 이걸로 펜의 몸통은 완성됐어요. 이제 잉크를 가느다란 관 안에 집어넣기만 하면 됩니다. 줄줄 흐를 것 같아서 걱정된다고요? 그런 염려 말아요. 우리가 넣기 어렵다면 잉크가 알아서 들어가게 하면 되죠. What?!
우리는 물의 강한 표면장력 때문에 벌어지는, 이른바 모세관 현상이라는 과학 원리를 이미 잘 알고 있잖아요. 가느다란 관(모세관)을 통해 물이 거슬러 올라간다!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된 물이 중력을 거슬러 잎까지 올라가는 현상 말이에요. 잉크가 깃대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이때문이죠.
짜잔~ 드디어 완성! 어때요?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본 깃펜. 정말 멋지지 않나요? 뿌듯하기도 하고요. 그럼 이쯤에서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할까요? 집에 돌아 가면 우리에게 귀중한 선물을 두 가지(패딩 점퍼, 깃펜)나 챙겨준 거위에게 고마움의 편지 한 통 써야겠어요. 오늘 만든 이깃펜으로 해리 포터처럼 말이죠. 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