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악(惡)을 향한 세 남자의 사투…영화 '대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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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 연출한 이원택 감독이 메가폰 잡은 정치물
조진웅·이성민·김무열 연기 대결 눈길 총선을 앞둔 1992년 3월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 분)은 한껏 들떠있다. '기호 1번'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해운대구에서 공천을 받아 여당의 지역구 후보로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 정치판의 숨겨진 실세 순태(이성민)는 공천 확정을 하루 앞두고 해웅이 아닌 다른 인물을 택한다.
순태에게 버림받은 해웅은 복수를 위해 악(惡)과 손을 잡는다. 영화 '대외비'는 국회의원 후보였던 해웅이 20년 동안 권력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정치·범죄 드라마다.
돈도 뒷배도 없이 정치판에서 분투하던 그는 거악(巨惡)인 순태에게 맞서기 위해 또 다른 악인 조폭 필도(김무열)를 끌어들인다.
영화는 정치 권력을 소재로 한 여느 영화처럼 권력을 향한 세 남자의 욕망과 암투를 그려냈다. 그 가운데에는 부산 해운대지구 개발에 관한 대외비 문서가 있다.
해웅은 이 문서를 무기 삼아 필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순태에게 대항한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극 중 순태는 "정치는 악마하고 거래하는 것"이라며 "권력을 쥐려면 영혼을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권력은 순수함과 열정을 기꺼이 빼앗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이 '데블스 딜'(악마의 거래·The Devil's Deal)인 이유이기도 하다.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날까 두려워하는 주민을 직접 찾아가 "여러분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해웅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다.
공천 탈락 이후의 좌절감, 그 뒤를 잇는 순태를 향한 복수심 따위의 뜨거운 무언가도 조금씩 사그라든다.
극의 초반부 순태가 해웅을 향해 던졌던 "원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럽다"는 대사가 해웅의 입을 통해 반복될 때 관객은 해웅에게 남은 건 권력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악인전'(2019)에서 두 주인공이 더 큰 악을 잡기 위해 힘을 합치는 과정을 그렸던 이원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권력을 가지려는 해웅과 필도, 그리고 쥔 권력을 지키려는 순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세 사람은 쫓고 쫓기고, 뺏고 빼앗기며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세 주인공을 연기한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의 연기는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조진웅은 평범한 한 40대 가장이 권력을 추구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공천 확정을 앞두고 희망으로 가득 찼던 해웅의 눈동자에는 믿었던 상대에 대한 배신감, 악의 축에 들어서며 느끼는 두려움, 힘을 얻게 된 뒤의 거만함, 더 큰 권력을 향한 야망 등 다양한 감정이 들어섰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성민은 최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에 이어 묵직한 카리스마로 존재감을 뽐낸다.
김무열은 네모로 각진 일명 '깍두기' 머리, 10㎏ 이상 체중을 늘려 만든 둔탁한 체형, 거친 부산 사투리를 소화해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 대결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특히 해웅과 순태가 마주하는 장면은 몰입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조진웅과 이성민은 몇 마디 대사와 표정, 눈빛만으로 흡사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작품의 제목이자 주요 소재인 대외비 문서는 지역 개발과 관련한 사회 권력층의 비리라는 익숙한 내용을 담는 데 그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내부자들'(2015) 등 소위 '거친' 남성들과 잔혹한 폭력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기존 정치 소재 영화의 기시감을 지우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감독은 "정치 소재를 다룬 영화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정치인을 직접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며 "좀 더 직접적이고 원색적으로 권력의 속성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내달 1일 개봉. 115분. 15세 관람가. /연합뉴스
조진웅·이성민·김무열 연기 대결 눈길 총선을 앞둔 1992년 3월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 분)은 한껏 들떠있다. '기호 1번'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해운대구에서 공천을 받아 여당의 지역구 후보로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 정치판의 숨겨진 실세 순태(이성민)는 공천 확정을 하루 앞두고 해웅이 아닌 다른 인물을 택한다.
순태에게 버림받은 해웅은 복수를 위해 악(惡)과 손을 잡는다. 영화 '대외비'는 국회의원 후보였던 해웅이 20년 동안 권력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정치·범죄 드라마다.
돈도 뒷배도 없이 정치판에서 분투하던 그는 거악(巨惡)인 순태에게 맞서기 위해 또 다른 악인 조폭 필도(김무열)를 끌어들인다.
영화는 정치 권력을 소재로 한 여느 영화처럼 권력을 향한 세 남자의 욕망과 암투를 그려냈다. 그 가운데에는 부산 해운대지구 개발에 관한 대외비 문서가 있다.
해웅은 이 문서를 무기 삼아 필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순태에게 대항한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극 중 순태는 "정치는 악마하고 거래하는 것"이라며 "권력을 쥐려면 영혼을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권력은 순수함과 열정을 기꺼이 빼앗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이 '데블스 딜'(악마의 거래·The Devil's Deal)인 이유이기도 하다.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날까 두려워하는 주민을 직접 찾아가 "여러분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해웅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진다.
공천 탈락 이후의 좌절감, 그 뒤를 잇는 순태를 향한 복수심 따위의 뜨거운 무언가도 조금씩 사그라든다.
극의 초반부 순태가 해웅을 향해 던졌던 "원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럽다"는 대사가 해웅의 입을 통해 반복될 때 관객은 해웅에게 남은 건 권력을 향한 멈출 수 없는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악인전'(2019)에서 두 주인공이 더 큰 악을 잡기 위해 힘을 합치는 과정을 그렸던 이원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는 권력을 가지려는 해웅과 필도, 그리고 쥔 권력을 지키려는 순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세 사람은 쫓고 쫓기고, 뺏고 빼앗기며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세 주인공을 연기한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의 연기는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조진웅은 평범한 한 40대 가장이 권력을 추구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공천 확정을 앞두고 희망으로 가득 찼던 해웅의 눈동자에는 믿었던 상대에 대한 배신감, 악의 축에 들어서며 느끼는 두려움, 힘을 얻게 된 뒤의 거만함, 더 큰 권력을 향한 야망 등 다양한 감정이 들어섰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성민은 최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에 이어 묵직한 카리스마로 존재감을 뽐낸다.
김무열은 네모로 각진 일명 '깍두기' 머리, 10㎏ 이상 체중을 늘려 만든 둔탁한 체형, 거친 부산 사투리를 소화해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 대결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특히 해웅과 순태가 마주하는 장면은 몰입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조진웅과 이성민은 몇 마디 대사와 표정, 눈빛만으로 흡사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작품의 제목이자 주요 소재인 대외비 문서는 지역 개발과 관련한 사회 권력층의 비리라는 익숙한 내용을 담는 데 그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내부자들'(2015) 등 소위 '거친' 남성들과 잔혹한 폭력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기존 정치 소재 영화의 기시감을 지우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감독은 "정치 소재를 다룬 영화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정치인을 직접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며 "좀 더 직접적이고 원색적으로 권력의 속성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내달 1일 개봉. 115분. 15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