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대마진은 리스크 대가…과도할 땐 '이자 장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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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무슨 역할을 할까은행이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이자 장사’를 해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대출 금리가 큰 폭으로 올라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커졌는데, 이 덕분에 은행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냈고 직원들에게 1조원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대통령까지 은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은행에 대한 반감은 뿌리가 깊다. 중세 유럽 성직자들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을 죄악시했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악마로 그렸다. 은행은 미움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중앙은행이 돈을 발행하면
은행은 예금·대출 반복 시행
'신용창조'의 과정을 통해
통화량 늘리며 자금 공급
예금은 단기, 대출은 장기 선호
은행이 간극 메우며 중개 역할
그 과정에서 이자 이익 발생
은행이 돈을 10배로 불리는 마법
걸핏하면 동네북 신세가 되곤 하지만 은행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번째가 통화 공급이다. 물론 돈을 찍어내는 일은 중앙은행이 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은행 금고에 잠들어 있으면 시중에는 돈이 풀리지 않는다. 돈이 돌게 하는 것이 은행의 역할이다.은행은 돈이 돌게만 하지 않는다. 돈을 불린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10억원을 찍었고, 이 돈이 여러 과정을 거쳐 김씨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자. 김씨는 10억원을 A은행에 예치했다. 은행의 지급준비율은 10%로 가정한다. 어느 날 이씨가 A은행에 와서 지급준비금 1억원을 제외한 9억원을 빌려 갔다. 이씨는 이 9억원으로 박씨 소유의 빌딩을 매입했다. 박씨는 빌딩을 판 돈 9억원을 B은행에 예치했다. 이제 시중에 풀린 돈은 김씨의 A은행 예금 10억원과 박씨의 B은행 예금 9억원을 합쳐 19억원이 됐다.B은행은 다시 9억원 중 8억1000만원을 최씨에게 빌려줬고, 최씨는 이 돈을 C은행 예금에 넣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통화량은 100억원까지 불어난다. 이처럼 은행이 예금과 대출을 반복해 통화량을 늘리는 과정을 ‘신용 창조’라고 한다.
본원통화 대비 늘어난 통화량의 비율이 통화승수다. 통화승수는 지급준비율의 역수다. 따라서 지급준비율이 높아지면 통화량이 줄고, 지급준비율이 낮아지면 통화량이 늘어난다.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유
은행의 또 한 가지 기능은 단기 예금과 장기 대출을 연결하는 ‘유동성 전환’이다. 쉽게 말하면 예금하는 사람과 대출받는 사람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예금하는 사람은 만기가 짧은 예금을 선호한다. 또 언제든지 돈을 인출할 수 있기를 원한다. 뜻하지 않은 일로 돈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출받는 사람은 만기가 긴 대출을 선호하고, 중도 상환 요구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 대출을 받아 가게를 낸다든지 투자를 한 경우 이익을 얻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간극을 메우고 예금자에게서 대출자에게로 돈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은행의 역할이다. 토드 벅홀츠는 <러쉬>에서 “금리가 인간을 화합하게 한다”고 했다. 은행은 금리를 매개로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예금자와 대출자 간에 돈이 오가는 일을 가능케 한다.은행이 얻는 이자이익은 예금과 대출을 중개하면서 떠안는 리스크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적정한 예대마진의 폭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예금 금리보다 큰 폭으로 올려 예대마진을 키웠다가 금융당국이 ‘이자 장사’를 경고하자 대출 금리를 낮춰 예대마진을 줄였다.
뱅크런의 위험성과 금융에 대한 신뢰
단기 예금을 장기 대출로 전환하는 은행의 기능은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지 않는다는, 다시 말해 뱅크런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작동한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은 파산 위기로 치닫는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필립 디비그 워싱턴대 교수는 뱅크런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중앙은행이 지원하는 예금보험을 대책으로 제시했다.금융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주체들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은행은 은행대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