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조선왕릉…봉분 지름 최대 3m 축소

문화재청, '조선왕릉 봉분 및 능침지반 연구' 보고서 발간
후기 들어 배수 체계 발달…"입지 못 다진 왕 무덤, 관리 소홀하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며 봉분(封墳) 규모가 최대 3m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선왕릉 40곳과 관련한 문헌 내용을 분석하고 현장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 '조선왕릉 봉분 및 능침지반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1일 밝혔다.

보고서는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에 나온 조선왕릉 기록을 살피고 봉분의 크기와 높이, 간격, 과거 정비 사례 등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 무덤을 만든 봉분은 시대에 따라 규모가 조금씩 달랐다. 조선 초기 왕릉은 왕과 왕후의 관(梓宮·재궁)을 묻은 현궁(玄宮)을 대형 석재로 넓게 만들어 봉분의 지름이 32∼35자(약 9천856~1만780㎜)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15세기 후반 이후에는 현궁을 대형 석재 대신 회격(灰隔·석회나 가는 모래, 황토 등을 이용해 만든 관)으로 조성하면서 점차 봉분의 지름이 줄어들었다.

17세기 후반 들어서는 봉분 아래에 무덤방을 두 개 둔 합장릉을 제외한 단릉 및 쌍릉, 삼연릉 봉분의 좌우 지름과 간격을 조절하면서 지름이 25자(약 7천700㎜)까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봉분 주변에 있는 사대석, 난간석 등 석물(石物) 또한 지름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봉분을 형성한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하는 병풍 사대석을 갖춘 왕릉은 조성 당시의 봉분 제도에 비교적 부합했으나, 봉분의 높이는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봉분 둘레를 장식하는 난간석만 갖춘 경우에는 봉분 지름은 넓어지고 높이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 초기에는 봉분 사방으로 미세한 경사면을 둬 곡장(曲牆·무덤 뒤에 둘러 쌓은 나지막한 담) 주변으로 배수로, 배수구 등을 설치했으나 후기 들어서는 발달한 배수 체계를 조성했다는 점도 보고서에 담겼다.

아울러 향후 봉분과 능침 지반 정비를 위한 기준과 방향 등도 제시했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후대에 추존(追尊·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던 일)되거나 왕실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왕과 왕후의 무덤은 조선 시대에서부터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문화재청 누리집(www.ch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