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미·중 외교전…시진핑, 러시아 가서 푸틴 지지 선언하나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외사판공실 주임)이 러시아를 방문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21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날 왕 위원이 곧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우리는 왕 위원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의제는 명확하고 매우 광범위하다. 이야기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왕 위원이 14~22일 일정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지난 17~1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했으며, 20일 헝가리로 이동했다.

이와 관련해 왕 위원의 이번 방문이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달 30일 작년 외교 결산 논평에서 "올해 러시아와 중국은 양자 관계를 더욱 증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올해 양국 의제의 중심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한 건 2019년 6월이 마지막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을 방문했다. 이후 양국 정상은 9월 우즈베키스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만났으며 지난해 12월엔 화상 회담을 가졌다. 한 나라의 정상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이벤트에는 통상 양국의 우호 증진을 상징하는 각종 협력이 따라붙는다. 작년 2월 푸틴의 방중 당시엔 중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매년 100억㎥씩 수입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외교가에선 이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알렸으며, 시 주석은 올림픽(2월 4~20일) 이후 시점을 제시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러시아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는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침공 초기에는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등 사실상 러시아를 지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정상회담에선 시 주석이 전쟁 지속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과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을 표하는 등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도 중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시 주석이 러시아에 간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미(反美) 공조를 다시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을 보인다. 미·중 갈등은 최근 미국이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한 이후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 18일 뮌헨에서 왕 위원을 만난 뒤 당일 한 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주장했다. 또 만남 자리에서 왕 위원에게 이런 지원이 미·중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고 소개했다.

이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장에 끊임없이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중국 측이 아니라 미국 측"이라며 "미국 측은 중국 측에 명령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이 중국-러시아 관계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하는 데 대해 수용한 적이 없으며, 협박과 압박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반발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